일본에서 3년정도 지내면서 이곳저곳을 다녀본적이 있는 나는 일본인들에게 있어 고양이가 어떤 존재인지 얼핏이나마 알고 있다. 일본인들 특유의 여유를 고양이를 보면 알 수 있다. しにせ(시니세:오래된 상점)를 지키는 것은 마음 좋은 주인이 아니라 포동포동 살오르고, 몸짓에서, 눈짓에서 여유를 빼면 남는 것이 없어 보이는 고양이들일 때가 많다. 손님을 제일 처음 맞아주는 것은 상점 입구 한켠에 자리를 잡은 고양이들이다. 한국에서 그런 상황을 접해본 적이 별로 없던 나는 처음에는 고양이가 제법 많다는 점에 놀라고 두번째는 일본인들이 고양이를 애지중지한다는 점에 놀랐다. 집에서 애완용으로 키우는 수준을 넘어서서 일본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 고양이는 신화적인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속에 종종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최근에는 아들,딸이 좋아하는 요괴워치에도 주인공으로 지바냥이라는 고양이가 나온다. 어린이들 보는 애니메이션인데도 캐릭터는 제법 귀엽다.
그런 고양이가 나오는 소설책이 도착했다.
만화책을 연상케하는 책 표지에 심상치 않은 제목이 어딘가 모르게 어우러진다.
이 책은 제목이 이미 말해주듯이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 사람들을 기묘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고양이들이 한다.
총 4부로 나누어진 소설은 각각의 슬픔을 안고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이야기를 풀어가는 주인공 고로와 히로무가 나온다. 그리고 이들을 묶어주는 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미코 아줌마와 고양이들이 나온다. 눈치가 빠르지 못한 나는 결국 4부 중반이 되어서야 주인공들의 관계가 어떻게 빨간 실로 이어져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그랬듯이 왜 나의 인생은 이렇게 풀리지도 않고 지독히 고독하고 외로운지 모르겠다는 사람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 태반이 느끼는 점일 것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런 사람이 더 많이 보이고 당장 나부터가 그렇다. 고로와 히로무와는 형태가 다를 뿐 결국 같은 [인생의 슬픔]을 우리는 다 맛보고 있다. 부모님들의 말대로라면 삼재와 내년에 아홉수가 있기 때문에 결코 평탄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라는 인생의 예견된 고비를 나는 지금 보내고 있다. 누구보다 덜 슬프다, 더 슬프다의 문제가 아니라 크든 작든 인생의 고비에서 사람은 모두가 다 힘들다. 절대로 나만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런 힘든 시기를 어떻게 지나갈것인가의 방법적인 접근을 개인들은 고심한다. 그 밑바탕에는 굳건히 버티고 서 있는 나 자신도 있지만 가족이 있어서 다시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내 핏줄이 이어졌든 그렇지 않든 나에게 소중하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준다면 그게 바로 가족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다.
이 소설은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서로 도와가며 자신들의 슬픔을 직면하면서 한 단계 성장해가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요즘같이 타인에게 무신경한 현대인들에게 혼밥, 혼술을 권할 것이 아니라 타인과 조금더 마음을 나누고 가까워질 기회를 이 책은 고양이를 통해 우리에게 권하는 듯하다.
과연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최순실이라는 사람은 돈과 권력이면 한 국가를 쥐락펴락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고 말았다. 국민들의 촛불시위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돈과 권력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부모들의 처절한 외침이 아닐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땅의 청소년들은 저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부유하게 살면 행복하구나라고 단정지어버릴지도 모른다.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사실 알고 있는 듯하다. 대한민국에서 먹고 살기 빠듯하여 그것을 잠시 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야기는 최순실에게까지 흘러갔지만 그 사람은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슬픔과 분노의 밑바닥에서 무엇이 소중한 지 일깨워준 한 마리의 고양이일지도 모르겠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