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세상과 사회의 본질에 대해 알아가던 대학생 시절부터
귀가 따갑게 듣던 소리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구는 이것이다.
한국인이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을 가장 심하게 한다,
한국의 인종차별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나쁘다,
그에 반해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는 인종차별이 없다,
한국은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인종차별이 없는 모습을 보고
부끄러워하면서 본받아야 한다...................................
저런 소리들을 대략 10년 정도 진실이라고 믿고서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 <문명과 혐오>를 읽고 나서
그런 선입견이 산산히 박살나 버렸다.
<문명과 혐오>는 미국 사회의 수많은 병폐와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미국의 병든 모습들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미국 역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서부개척이
사실은 미국 땅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는 일이었다는 것을 비롯하여
아직도 벌어지고 있는 흑인들에 대한 집단 폭력과 인종 차별을 비롯하여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는 대기업들의 횡포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민낯이 이 책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특히 2020년 현재에도 미국 사회에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경찰들의 흑인 사살이나 과잉 진압이
비단 지금에 와서 불거진 일이 아니라
이미 100년도 넘게 오랫동안 계속 이어지고 있는
미국 사회의 전통이라는 점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세계사 관련 책들을 오랫동안 읽으면서 하나 깨달은 점은
제국을 지탱하는 힘은 바로 신화라는 것이다.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2차 대전의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친일파들이
일제에 충성을 바쳤던 이유는
그들이 일제는 무적이라는 신화를 믿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들은 일제의 동맹국 수장인 히틀러가 자살하고
나치 독일이 항복했다는 사실을
일본 신문을 통해 보았으면서도
그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 신화는 소련군의 만주작전으로 인한
만주국의 붕괴와 관동군의 항복 및
일제의 패망으로 인해 비로소 깨어졌고,
그제야 조선은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국제 금융위기에 이어
2016년 트럼프 같은 극단적인 국수주의자의 집권과
그로 인해 플로이드 사망 사건 같은
미국 내 인종 갈등이 다시 재점화되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믿어왔던
미국은 인종차별이 없고 정의와 공정한 나라라는
신화에 금이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머지않아 미국이라는 제국도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