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고전독서회에서는 플라톤의 <국가, Politeia>를 읽었습니다. 고전독서회에서 그동안 읽었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다룬 작품들은 이상국가를 꿈꾸는 자들의 편향된 생각이라는 비판을 담았다고 하겠습니다. 토마스 만의 <유토피아> 역시 이상국가를 꿈꾸지만 현대적 시각에서 본다면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는 이상국가에 대한 논의의 효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404년)에서 아테네가 패한 뒤로 스파르타가 세운 30인 참주가 이끌던 참주정치의 폭정 끝에 들어선 민주정 치하에서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하는 사건(기원전 399년)에서 플라톤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건은 철학자가 통치하는 나라가 이상국가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592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쉽게 읽히는 것은 물론 우리말 번역이 잘 된 까닭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대화체로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우리네 일상과 닮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대화의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한 비유가 때로는 적절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모두 10권으로 나뉘어 있는 <국가>에서 플라톤은 정의가 무엇인지, 국가의 구성요소, 이상국가가 되려면 철학자가 다스려야 하는 이유,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상국가의 치자는 체육과 시학을 공부해야 하지만 모방적인 시는 추방되어야 하는 이유 등의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를 추천하신 헤라스님은 토론회에서 논의할 주제를 무려 여섯 가지나 내놓았습니다.
1. 국가를 읽고 나서 3분이내로 자신의 소감을 말해보세요?
정신과를 전공하시는 심강현 선생님이 쓴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에서 추천한 책읽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다룬 첫 번째 철학자가 플라톤이었고,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명> 그리고 <국가>를 읽어보기를 권했습니다. 처음 읽은 <플라톤의 다섯 대화편>은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상대가 되었던 테아이테토스, 필레보스,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파르메니데스 등이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맹목적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토론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가>에서는 당당히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맞서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소피스트 트라쉬마코스가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자기는 가르치려 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남들한테 배우되 고마워할 줄 모르는 것,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의 지혜라는 것이지.(49쪽)’라는 독설도 서슴치 않습니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처음 다룬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는 이해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정의를 정의하기 위하여 내세운 비유들이 지나치게 현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마이클 센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정의론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플라톤의 <국가>를 인용하지 않은 것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상국가를 철학자가 다스려야 하는 이유도 쉽게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철학을 전공하신 분이 딱 한 분이었는데, 그 분이 재임하면서 보여준 정치형태가 이상국가였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2. 플라톤이 말하는 이상국가는 수호자 및 치자의 처와 자식을 공유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다. 철학자가 통치하고, 각자의 계급에 맞게 일하는 것이다. 본인이라면 어떤 이상국가를 제안하겠는가?
플라톤은 남자의 본성과 여자의 본성이 전혀 다르다고 하였지만, 남녀의 본성의 차이가 국정을 운영하는 일에서 차별될 이유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여성도 교육을 받아 국가의 수호자가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남녀 수호자들이 처자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어쩌면 과거의 모계사회로의 회귀를 고려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분업화된 일을 맡아 자신이 맡은 일에 종사토록 하고, 재산을 공유한다는 개념은 공산주의의 바탕이론이라 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공산주의 체계가 실패한 것은 사람들의 욕구가 이론대로 따라가 주지 않는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국가는 그야말로 이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각자 능력에 따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그런 국가가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차별점이 있는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이상국가라는 생각이 편견일 수 있겠습니다.
3. 법을 검토하는 부서에서 출산휴가 등등으로 70%가 자리를 비워 정상적인 업무가 곤란하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이 법을 이용하여 각자의 권리를 최대한 찾는다. 이것은 정의롭고 공정한가?
꼭 법을 검토하는 부서가 아니더라도 출산 휴가 등 법이 정한 바에 따른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출산휴가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직종에서는 임신과 출산의 순서로 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남성 혹은 여성만의 직업이라는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이 많았던 간호분야에서도 남자 간호사가 늘고 있습니다. 특정 직업군에서 종사하는 사람의 구성을 남녀노소로 균형을 맞추는 등의 보완을 통하여 업무공백을 최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법을 잘 아는 사람만이 각자의 권리를 최대한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법을 잘 모르는 사람도 각자의 권리를 최대한 찾아갈 수 있도록 운영되는 조직이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가 아닐까 싶습니다.
4. 전장연이 지하철을 점거하여 시위하다가 처벌을 받는 다고 한다. 이는 정의롭고 공정한가?
장애우의 처우개선을 위한 사회적 노력이 부족하다는 그분들의 인식에는 동의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우개선을 요구하기 위하여 출퇴근 시간대에 지하철을 점거하여 타인이 누려야 할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는 적절해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언젠가부터 우리사회가 극단적인 행동으로 권리를 쟁취하려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분들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일반 시민들을 불편하게 할 일이 아니라 관련 정책을 담당하는 주무부서에 가서 담당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편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5. 플라톤은 동굴에서 그림자만 보는 삶이 현재의 삶이고 허구라고 한다. 동굴을 나와서 태양을 보는 경우가 이데아이며 이를 이상적이고 선의 삶이라고 한다. 만약 본인이 우연하게 동굴을 나와서 태양을 본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동굴의 비유를 철학적으로 해석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동굴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들이 실재의 삶이라고 믿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림자의 움직임은 허상에 불과하고 다리와 목이 쇠사슬에 묶여 있는 동굴 안 사람들의 삶이야말로 암담한 현실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동굴 안에서 쇠사슬에 묶여서 살던 사람이 풀려나 동굴 밖으로 나와 동굴밖에 펼쳐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반드시 이상적이고 선한 삶을 산다고 볼 수도 없는 노릇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동굴에 갇혀서 살던 사람이 동굴 밖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쉽게 어울려 지낼 수 있을까요?
도형으로 나타내고 있는 동굴의 구조로 보아서는 동굴입구에서 한참을 들어가야 볼 수 있는 담 밖을 사람들이 지나가고 그 사람들의 그림자가 동굴 벽에 비쳐질까 의문입니다. 어떻거나 동굴 밖의 세계가 실체이고 동굴 벽 비치는 그림자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현실의 삶을 이상적인 삶과 비교하여 설명하기 위한 비유라고 할 것입니다. 이상적인 삶을 살기 위하여 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교육이란 혼의 지적 기관을 어떤 방법을 써야 가장 쉽고 가장 효과적으로 전향시킬 수 있는가 하는 기술(391쪽)”이라고 말입니다.
6. 각자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질문 하나씩 제안하세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뒷세이아>,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등을 읽으면서 그리스의 신들의 행태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시학에 관한 플라톤의 관점에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호메로스 등 음유시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대중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신과 영웅들의 본성을 나쁘게 묘사하고 있는 점이 특히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것이었고, 그런 내용들이 사실이 아니고 시인들이 지어내 거짓말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은 퇴출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교육은 중요하다고 합니다. ‘리듬과 선법은 그 무엇보다도 더 깊숙이 혼의 내면으로 침투하여 우아함을 가져다줌으로써 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며, 시가를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은 예술작품이나 자연의 결점들을 가장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