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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도서] 행복의 기원

서은국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일례로 방글라데시가 매우 행복한 국가라는 언론 보도는 학계의 결론과 다르다. 너무나 똑똑한 현대인들의 실수는 그 단순성을 외면하며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돈을 벌고 출세하는 데 삶을 바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늘이 어제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행복의 본성과 궁합이 맞지 않는 삶이기 때문이다.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 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 이 둘의 공통된 원천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는데 진통제가 효력 있다는 연구도 있고, 따스한 스프를 먹으면 덜 외로워진다는 논문도 있다.

 

 

종의 각 개체는 유전적 변이 등에 의해 조금씩 다른 모양과 특징을 가지고 태어난다. 60억 인구의 생김새와 성격이 서로 다르듯, 이런 특성 중 어떤 것은 특정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더 적합하고, 어떤 것은 불리하다. 후세에 대물림(유전)되는 개인 간의 '매우 사소한 모든 형태의 차이'가 결국 진화의 긴 과정에서 증폭되어 생존 여부를 가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섬의 씨앗이 모두 단단한 껍질로 싸여 있다고 하자. 이 섬에서 태어나는 참새는 튼튼한 부리를 가지는 것이 유리하다. 이 섬에서는 큰 부리 참새들이 많이 살아남게 되고, 그들이 후손 중에는 '큰 부리 유전자'를 가진 녀석들이 점덤 많아진다. 이 과정이 수백, 수천 세대에 걸쳐 지속되면 이 섬은 결국 큰 부리 새들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새들을 관찰하며 얻은 영감이다.

 

 

그러면 개는 왜 그토록 새우깡을 먹으려고 했을까? 새우깡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먹을 때 개의 뇌에서 유발되는 쾌감 혹은 즐거움 때문이다. 개는 이 쾌감을 다시 느끼기 위해 새우깡을 계속 원하게 된 것이고, 그 과정의 누적이 서핑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사실 나는 개도 서핑도 관심 없다. 하지만 이 예시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본질적 속성을 아주 쉽게 설명한다. 한마디로 행복의 본질은 개에게 서피을 하도록 만드는 새우깡과 비슷하다. 차이점은 인간의 궁극적 목표가 서핑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점이다. 서핑과 생존. 차원이 다른 두 목표지만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이 필요하다. 개 주인이 사용한 수단은 새우깡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은 기막힌 설계를 했다. 내 생각에, 개에게 사용된 새우깡 같은 유인책이 인간의 경우 행복감이다. 개가 새우깡을 얻기 위해 서핑을 배우듯, 인간도 쾌감을 얻기 위해 생존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이 된 자들은 이 강렬한 기분을 느끼고 또 느끼기 위해 일평생 사냥과 이성 찾기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게 된다.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거창한 포부 때문이 아니라, 개가 새우깡을 통해 얻는 쾌감을 인간도 최대한 자주, 많이 느끼기 위해 고기와 이성에 몰두한 것이다.

 

"행복감을 인간이 왜 느낄까?" 나의 간결하고도 건조한 답은 "생존, 그리고 번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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