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을 살아보니 (리커버)
/저자 김형석 /출판 덴스토리(Denstory)/발매 2021.09.01.
21세기를 끝내면서 미국의 주간지 『타임』은 100년 동안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을 선정한 일이 있었다.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선정되었다. 반면 알렉산더 대왕의 가정교사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조용히 아테네에서 강의하고 저술했을 뿐인데, 그의 정신적 유산과 혜택은 23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의 감사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정신적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은 인류가 남긴 업적의 혜택을 누리는 일에 동참함으로써 행복을 누린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과 성공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재능과 가능성을 유감없이 달성한 사람은 행복하며 성공한 사람이다. 정성 들여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실패가 없으나 게으른 사람에게는 성공이 없는 법이다. "경제는 중산층에 머물면서 정신적으로는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이 행복하며, 사회에도 기여하게 된다" 그의 인격의 수준만큼 재산을 갖는 것이 원칙이다. 역시, 사람은 어느 정도의 재산이 필요한가라고 묻는다면 그의 인격 수준만큼의 재산이 있어야 한다. 10년 가까이 준재벌 며느리로 세월이 지난 다음에 딸이 하는 이야기는 달랐다. 온 가족이 경제의 노예가 되어 살고, 삶의 가치를 재산의 다소로 평가하며 무엇보다 사위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니까 가엾어 보인다는 것이다.
돌아와서 나는 내 생활의 한 단계 높은 가치를 깨달았다. 지금까지는 돈을 위해서 일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돈보다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일하는 삶의 방향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느덧 80의 나이가 되었다. 일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때의 대답은 '일은 이웃과 사회에 대한 봉사'라는 것이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내가 있다.'라는 명제가 가장 적절한 대답이다. 90고개를 넘기면서는 나를 위해 남기고 싶은 것은 다 없어진 것 같았다. 오직 남은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사랑을 베풀 수 있었으면 감사하겠다는 마음뿐이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었다. 그는 철학적인 뜻도 있어 결혼을 거부했다. 그런데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허무한 고독을 느끼는 사람은 자녀들이 없이 인생을 마감하는 사람이라고. 90이 넘도록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나를 위한 특전이 아니라 더 보람 있는 삶을 위해 주어진 기회라고 믿게 되었다.
그런 과거를 이어오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더 지체하지 말고 한 가지 공부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난날들을 보내면서 하지 못했던 일들도 좋고, 취미와 소질이 있다고 생각되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도 좋을 것이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만이라도 계속해 살려간다면, 늦게 시작한 일이 지금까지 해온 일들보다 더 큰 행복과 성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나에게 시한부 인생이 주어진다면 그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50고개를 넘기게 되면 10여 년씩의 설계를 해본다. 많은 선각자들은 50이나 60대 이후부터 그런 실존적 결정을 내릴 수 있었기에 역사 건설의 주춧돌을 놓았던 것이다. 인생의 나이는 길이보다 의미와 내용에서 평가되는 것이다. 누가 오래 살았는가를 묻기보다는 무엇을 남겨주었는가를 묻는 것이 역사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돈과 경제는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관념이다. 돈과 경제는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한 수단이며 과정일 뿐이다. 일은 포기하고 주어진 유산으로 사는 젊은이들은 성공하거나 행복해지는 예는 없다.
의사 자격을 취득할 때까지 슈바이처의 노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되었다. 자신도 특별한 건강을 타고났기에 가능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의사 자격을 얻은 후에는 열대의학에 관한 분야까지 추가로 공부해야 했다. "몇 해 동안 자신을 잊고 강의와 의학 공부에 열중했고, 그 모든 일을 끝냈을 때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라고. 강철같은 의지의 사나이였다. 김태길 선생은 그 당시 가장 인기 높은 법학을 택했다가 후에 윤리학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75세까지는 정신적으로 인간적 성장이 가능하다.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성숙은 그런 한계가 없다. 노력만 한다면 75세까지는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도 60이 되기 전에는 모든 면에서 미숙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 사이라고 믿고 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40대라고 해도 공부하지 않고 일을 포기하면 녹스는 기계와 같아서 노쇠하게 된다. 차라리 60대가 되어서도 진지하게 공부하며 일하는 사람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실한 노력과 도전을 포기한다면 그는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된다. 인생에서 50에서 80까지는 단절되지 않은 한 기간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50부터는 80이 되었을 때 나는 적어도 이러한 삶의 조각품을 완성해야 한다는 준비와 계획과 신념과 꾸준한 용기를 갖고, 제2의 마라톤을 달리는 각오로 재출발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칸트는 80년을 살았다. 그는 왜소하고 건강에 있어서는 열등생이었다. 산책 외에는 운동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무엇이 그의 건강을 지탱했는가. 학문에 대한 열정과 일이었다. 어떤 이들은 칸트를 나귀와 같이 많은 짐을 지고 살았다고 평한다.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하루에 몇 시간씩밖에 수면시간을 갖지 않았다. 정신적 일뿐 아니라 육체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90을 넘길 때까지 일에서 손을 놓은 적이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해서 지식을 넓혀가는 일이다. 70대에 갖고 있던 지식을 접거나 축소하지 말고 필요한 지식을 유지하거나 넓혀가는 일이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해갈 수도 있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강의나 강연회에 참석하는 일도 필요하다. 구름은 천재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사진 기술을 배워가지고 구름들을 찍어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이다. '하늘과 구름' 그 속에는 무한에 가까운 예술품들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곤 한다. '구름 사진가' 그런 예술가로 남았으면 좋겠다.
《백년을 살아보니(리커버) 김형석 저》에서 일부분 발췌하여 필사하면서 초서 독서법으로 공부한 내용에 개인적 의견을 덧붙인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