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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eBook]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공저/이민아 역/박한선 감수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 책은 '자기가축화' 개념을 비롯하여 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에게 있어 다정함(=친화력)의 유리함을 알려줍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친화력의 배타적 잔인성도 제시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바탕으로 전세계에 만연한 양극화에 해결의 제스처를 취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적자생존'은 흔히 약육강식 논리의 근거로 제시되곤 합니다. 그러나 적자생존의 본질적 의미는 '살아남아 생존가능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능력', 즉 번식의 유리함을 가리킵니다. 다윈은 오히려 19세기 말에 서방에 만연했던 약육강식 논리를 대체하기 위해 이 개념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두드러지게 강한 개체는 오히려 강한 스트레스를 받고 생존과 번식에 불리하며, 협력하는 개체들이 가장 번성합니다.

현생의 인류는 단일하게 호모사피엔스지만 몇백만년 전엔 역시 인류라 부를 수 있는 최소 4종의 종족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이들 중 호모사피엔스만이 생존하여 번성가능케 했던 키워드가 '다정함'이라 주장합니다.

 

챕터의 1장부터 3장까지는 개, 은여우, 보노보 등 다른 동물의 사례를 들어 ‘가축화’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1장 '생각에 대한 생각'에서 저자는 타자의 의사를 추측하는 능력, 즉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을 연구했던 일화를 들려줍니다. 가장 기초적인 협력적 의사소통은 타자의 몸짓을 읽는 일이며, 거의 모든 인간 신생아들은 생후 1년도 안 되는 시기에 이 능력을 익힙니다. 그러나 인간과 유전적으로 밀접한 종인 침팬지는 이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직접 키우던 개를 데려와 실험합니다. 놀랍게도 저자가 기르는 개 말고도 보호소에 있는 개들 전부가 실험에서 사람의 몸짓을 읽어내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늑대에서 개로 이루어지는 가축화 과정에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의 촉발이 있었다고 추측합니다.

제2장 '다정함의 힘'에서는 갓 태어난 새끼여우 실험을 다룹니다. 벨랴예프의 은여우 실험은 야생동물의 가축화 과정을 다룬 것으로 유명합니다. 저자는 이 실험 현장에 직접 찾아가 선별적 교배를 거친 친화적 새끼여우와 보통 새끼여우의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을 시험합니다. 친화적 새끼여우들은 대조군은 물론이고 반려견 품종의 개들보다도 뛰어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능력은 유전적으로 새겨지는 가축화의 결과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가축화는 동물을 단지 우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협력과 의사소통에 관련된 인지능력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또한 고고학 분야에서 늑대의 가축화와 인간의 농경시대 사이에 있는 시간간격을 통해 늑대들이 농경인에게 길들여지기 이전에 이미 '자기가축화' 과정을 겪었음을 추측합니다. 늑대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코요테, 여우, 사슴, 흰족제비, 방울새 등의 종을 통해 생물 개체들이 밀집해 지낼 시에 자연선택적으로 일어나는 ‘자기 가축화’ 과정을 설명합니다.

제3장 '오랫동안 잊고 있던 우리의 사촌'에서는 침팬지와 보노보를 비교합니다. 두 유인원은 현생 인류에게 가장 유전적으로 가까운 타종이며 이들끼리도 갈라진 지 얼마 안 된 친척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공격성과 친화력에서 명백한 차이를 보입니다. 침팬지는 무리안에서도 동족살해가 잦고 새끼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보노보는 다른 무리에서 들어온 보노보 역시도 환영합니다. 수컷이 암컷에게 공격성을 보이면 암컷들은 협동해서 그 수컷을 견제하며 수컷의 새끼에 대한 공격시도도 거의 없습니다. 수컷들은 힘이나 공격성이 아니라 암컷과의 친화력으로 번식에 승부합니다. 저자는 이들 보노보와 침팬지의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을 시험합니다. 침팬지는 낯선 개체와의 친화적 상호작용, 협력, 의사소통이 불가능했으나 보노보는 가능했습니다. 보노보는 인간의 손을 타지 않고도 이미 '자기가축화'를 거친 종인 것입니다.

 

흔히 ‘가축화’는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지지만 이들 가축화된 종족은 다른 종의 몸짓을 해석하거나 협력적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 우수한 인지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공격성이 심한 야생종들은 할 수 없는 작업까지 이들은 협력하거나 소통하여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 자신들을 평화로운 종으로 길들이는 ‘자기가축화’가 이들의 생존과 번성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입니다.

저 역시 여태껏 가축화를 다른 동물을 사람에게 편한 형태로 길들인다는 의미에서 잔학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다른 종과의 의사소통 능력을 비롯하여 유용한 인지능력을 개발시킨다는 점이 새로웠습니다. 또한 인간의 의도가 개입된 가축화 이전에 무리지어 사는 동물종이 특정 조건하에서 스스로를 가축화시키는 '자기가축화' 개념을 처음 접했습니다.

 

4장과 5장에서는 인간의 ‘자기가축화’, 즉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4장 '가축화된 마음‘에서는 인간의 생물적 반응과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 사이의 연관을 근거로 사람 역시 자연선택에 따라 문화적 인지능력이 크게 변화했다고 추측합니다. 이것이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간은 앞서 제시된 종들과 비슷하게 ‘자기가축화’를 거쳤으면서도 그들보다도 탁월한 인지능력을 갖게 된 셈인데, 이에 대한 해답은 ‘자제력’이며, 이 자제력은 뇌 용적과 대뇌피질 신경세포의 밀도에 의존합니다. 이미 이러한 뇌 크기와 자제력을 갖춘 4종의 인류 아종이 몇만년 전에 현생 인류 호모사피엔스와 같이 존재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호모 사피엔스만이 친화력을 통해 사회 연결망을 확장하고 기술 혁신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인류의 두개골 화석에 나타나는 ‘가축화’ 형상을 분석합니다. 또한 현생 인류는 하얀 공막으로 상대방에게 홍채의 움직임을 드러내는 유일한 종입니다. 대부분의 동물은 자신의 공막을 숨겨 경쟁자에게 자신의 의도를 숨겼으나 인류는 반대로 이것을 드러냄으로써 약 8만년 전에 친화력과 협력, 신뢰를 선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제5장 ‘영원히 어리게’에서는 사람을 비롯해 ‘가축화’가 진행된 종에게서 드러나는 발달의 특징을 다룹니다. 친화력 상승은 각 종의 생에 걸쳐 일어나는 발달에서 드러납니다. ‘가축화’된 동물들은 발달 과정에서 사회화 기간이 연장됩니다. 이 과정에서 세로토닌을 통해 두개골 형태를 변화시키고 뇌의 발달기간을 연장하여 문화적 환경을 학습합니다. 사람은 ‘사회장’을 통해 집단정체성 또한 크게 확장시키며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공감능력이 높아집니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친화력 선택’를 통해 생존했을 뿐 아니라 그 효과를 극대화시켜 번성한 것이 됩니다. 약 8만년 전에 일어난 인간의 자기가축화로 사람은 폭발적 인구증가와 기술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친화력을 통해 여러 집단의 낯선 이들끼리도 소통하여 교류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제패한 것입니다.

 

인간 역시 스스로를 '자기가축화'한 종이며 유전적으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특히 하얀 공막의 특별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6장과 7장에서는 이러한 친화력과 자기가축화가 사람에게 가져온 어두운 일면 역시 드러납니다.

제6장 ‘사람이라고 하기엔’에는 ‘보편적 비인간화’ 개념이 제시됩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벨기에인들이 콩고를 식민지배하며 투치족을 우월하다 판정하고 그 외의 종족과 신분을 따로 식별하여 차별하였습니다. 벨기에인들이 물러가자 콩고의 후투족 반군들은 바냐물렝게족을 포함한 투치족을 학살하고 고문하였습니다.

사람은 자기가축화를 통해 집단정체성을 확장시켰으나 이것은 다른 집단에 대한 ‘보편적 비인간화’ 역시 촉발시켰습니다. 가족과 친구, 이웃에게 가졌던 친화력은 그 외부의 존재에 대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공격성을 발달시킵니다. 집단정체성은 사람에게 연민과 공감능력을 선사했지만 배타성과 적개심 또한 안겨준 것입니다.

제7장 ‘불쾌한 골짜기’는 이어서 친화력이 발달한 인간이 오히려 자신과 구분되는 인간들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근현대의 서방 백인들은 자신과 다른 인종을 인간도 아닌 유인원으로 분류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구경거리로 만들어 전시했습니다. 2007년에도 콩고의 반투족은 바카 피그미족을 동물원에 수용하였습니다.

인종차별과 제노사이드가 잠잠해진 후에도 전통적 편견은 더 교묘해진 신종 편견으로 대체되고, 밀그램의 복종실험과 밴듀라의 비인간화 실험은 각각 권위에 대한 복종심과 책임의 분산을 통해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사람들이 자신이 비인간화 시킨 집단의 미성년자를 성인으로 감지하는 인지오류 또한 관찰되었습니다.

이러한 차별 속에서 20세기 초에는 사람의 친화력이나 지능을 강화할 의도로 우생학이 대두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 종의 친화력 선택 진화는 전세계 인구가 100만명도 안 되었던 후기 구석기 시대에 일어났습니다. 이와 달리 현재 인류의 인구는 70억명이 넘어가는데, 진화를 위해 이 중 약 69억명에게 번식을 금지하는 선택압을 주는 건 불가능합니다. 또한 1가지 생물적 특성에 관련되는 유전자풀만 해도 수없이 많기 때문에 우생학에 의한 의도적 진화는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였고 우생학은 많은 이들에게 상처만 입히고 끝났습니다.

현대로 접어들며 이루어진 폭발적인 기술 혁신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이러한 어두운 점을 개선하지 못했습니다. 자연과학 이론이나 우생학은 물론, 사람의 편의를 위해 개발된 첨단 기술들은 사실 양날의 검입니다. 학문과 기술 자체가 인간의 잔인함에 이용될 소지가 얼마든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친화력은 인간을 서로 돕게 하고 평화를 불러오는 만능 키워드처럼 여겨졌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듯이 친화력이 강한 종일수록 오히려 배타성이 강해진다는 사실을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자기정체성을 집단정체성으로 확장할 수 있지만 그럴수록 집단 외부의 존재에게 배타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친구끼리 친밀해질수록 다른 친구에게는 배타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타인에게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내 집단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집단과 싸울 수 있습니다. 설령 인간 간의 갈등을 피한다 해도, 인간의 이득을 위해서 환경을 파괴하고 동물을 입맛대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원은 한정적인데 사람의 욕심(좋은 말로 하면 향상심입니다.)은 끝이 없기에 갈등과 다툼, 그 가운데서 비롯한 잔학함은 언제나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잔인성의 수위를 스스로 조절하려는 노력에는 의미가 있겠네요.

 

제8장과 제9장에서는 이러한 인간의 잔인성을 사회적으로 개선할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제8장 ‘지고한 자유’에서는 자기가축화된 인류가 ‘상호 적대감’을 쉽게 형성하여 독재자 역시 양산했음을 시사합니다. 겨우 합의하여 도출한 민주주의 방식 또한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능력이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며 어떤 정치적 사상을 갖고 있든 극단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정치적 경쟁자를 비인간화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측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신념은 유동적이며, 이 극단적인 비인간화에 대한 대응책으로 ‘접촉’이 제시됩니다. 비인간화된 인간에 대한 개인적인 접촉, 즉 우정이야말로 사상, 문화, 인종을 초원해 집단정체성을 일깨워주는 효과적이고 보편적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은 현재 극단적인 사상 대립이 첨예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이들을 모두 포용하는 도시 건축이나 일상적인 우정이야말로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해법입니다.

제9장 ‘단짝 친구들’ 에서는 동물을 인간과도 같이 친애하는 인간의 사례를 통해 인류가 다른 종과도 우정을 나눔으로써 협력하고 생존해온 이야기를 다룹니다. 인간은 종의 차이를 뛰어넘어서 대상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종이기도 합니다. 애정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장시켜 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발산되는 잔인함 또한 스스로 성찰하고 갈무리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인간애나 화합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친화력(=다정함)'을 생물의 진화과정에 획득한 하나의 인지능력으로서 바라본 과학책이었습니다.

친화력이 인간 및 몇몇 생물들에게 고도의 인지능력을 안겨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축화'는 단순히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을 비롯한 진화에 도움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생존과 번식 유리할 경우 어떤 동물들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자기가축화'를 진행하며, 사람 또한 스스로 가축화를 거친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흥미로우면서도 긍정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친화력'은 '배타성'을 강화시켜 오히려 잔인함을 고조하는 어두운 일면이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꾸준한 접촉이 하나의 해법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흔히 히피 원숭이라 조롱당했던 보노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물의 '가축화'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흔들린 것 또한 제 마음을 들뜨게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책에서 친화력을 긍정하는 근거로 제시한 '생존과 번식'이 인간의 '행복'에 직결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한 타자와의 접촉으로 친화력을 키울 수 있지만 이때는 분명히 위험성이 존재합니다. 일례로 남성 장애인에게 성추행이나 폭행을 당한 후 공공적으로 적절한 격리나 보상 조치를 받지 못했다는 여성들의 분노가 가끔씩 터집니다. 자원봉사에는 주로 여성들이 많이 참여하는 편임에도 남성과는 접촉을 꺼리고 싶다는 문제를 저 개인이나 단체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유튜브를 보다가 문 앞에 물건을 내놨다가 도둑을 당했을 시 그 주인의 실책으로 여겨지는 탈북민의 이북사회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남한인이 탈북민과 같은 건물에 살다 문 앞에 놓인 택배를 도둑당했을 시 어떤 식으로 해결절차를 밟아야 하며 감정적으로 적절한 대응은 무엇일까요? 원래 한 나라였다가 갈라진 지역의 사람들이며 많은 이들이 남한으로 오기에 결코 멀지 않은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접촉에는 항상 착취와 손실의 위험성이 존재하며, 보노보가 침팬지에 비해서 동족을 챙기게 된 것도 콩고강 남부에 식량이 풍부해 다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노보는 오히려 자신과 집단정체성이 다른 개체에게 더 큰 적대감을 보이거나 싸운 상대에게 침팬지에 비해 화해의 제스쳐를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타자와 접촉할 때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부담은 어디까지이며 개인으로서 혹은 공공의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처리해야 할 것인가? 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친화와 화합이 공리적으로 긍정적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네요.

 

이 책은 저에게 흥미로운 생물학 개념을 알려주었으며 사회적으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사회적인 친화를 긍정하되 저자들의 직접적인 과학적 연구가 바탕이 된 책이라 설득력이 높은 점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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