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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초판본

[도서]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저/김승욱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많은 사람들의 인생책이라는 스토너를 드디어 읽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그 유명한 사람들의 극찬을 받았는지 기대가 컸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 영문학 교수로 평생을 산 윌리엄 스토너의 이야기. 이디스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사실은 그를 사랑하지 않은 이디스로 인해 결혼생활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첫 날 밤을 보낸 이디스가 구토하는 장면, 그리고 남같은 결혼생활 몇 년 후 갑자기 아이를 갖겠다며 스토너에게 덤벼드는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딸 그레이스를 얻는 기쁨도 있었지만 아빠와 딸을 떨어트려놓으려는 이디스때문에 딸조차도 마음껏 사랑해줄 수 없는 스토너. 결국 그레이스 마저도 자신의 엄마가 그러했듯이 도망치듯 성급히 결혼을 선택하고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교수로서 다른 교수, 학생들간의 크고 작은 갈등으로 늘 이리저리 치이는 가운데, 학생 캐서린을 만나 잠깐 동안 뜨거운 사랑을 한다. 스토너 삶의 유일한 사랑, 하지만 그것은 불륜이었고 결국 캐서린은 그를 떠난다.

늙고 병든 그는 마지막 순간에 그의 인생을 되짚어 본다. 무엇 하나 제대로 잘 해낸 것 없어보이는 실패한 것 같은 삶이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그는 깨닫는다. 학문에 대한 순수했던 사랑을 자신이 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끼며 그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절반 정도 읽었을 때, 내가 예상하던 그런 책이 아님을 뒤늦게 알았다. 조금만 더 읽으면 센 뭔가가 훅 하고 나오겠지 하면서 책장을 넘겨보지만, 그런 극적인 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없었다. 아, 스토너와 그의 연인 캐서린의 불륜이 가장 큰 사건이 아닐까 싶은데, 그마저도 보통 우리가 예상하는 그런 막장이 아닌, 그 어떤 사랑보다도 아름답고 고결해 보인다.

사실 그의 행동들을 볼 때 답답할 때가 많았다. 왜 이디스의 말도 안되는 횡포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지. 왜 헤어지지 않는지. 자신의 딸을 뺏어가는 것을 왜 그냥 보고 있는지. 진정한 사랑을 만났을 때 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지. 왜 다른 교수가 그를 짓밟으려 할 때 세게 저항하지 않는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스토너의 삶은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다. 늘 참고 인내하며 정답없이 그저 버티는 삶.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기보다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삶.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순간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그러면서도 스토너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 들을 놓치지 않는다. 소심해보이기만 하던 그도 처음 이디스를 만났을 때는 추진력이 있었으며, 본인의 강의가 위협을 받자 재치있게 그리고 강단있게 위기를 넘긴다. 그리고 캐서린과의 사랑은, 소심함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삶에 대한 열정과 사랑의 힘이자 그의 의지의 결과물이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것 같은 스토너이지만 모든 것은 그의 선택과 의지에 의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토너의 삶은 완벽하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다.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스토너다.

책 뒷부분으로 갈 수록 마음이 저릿해지더니 마지막 페이지를 읽자 여운이 길게 남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이 문장이 여러번 나오면서 내 마음을 건드린다. 내가 인생에서 기대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스토너처럼 나도 마지막 순간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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