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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 하정우

[도서]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2020년을 시작하며 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두 권의 책이 있다. 바로 『걷는 사람, 하정우』와 『마녀 체력』이다. 2019년을 닫는 12월과 2020년을 여는 1월에 차례로 만난 두 책은 나에게 '내 몸을 쓰고 싶다'라는 열망을 강하게 불러일으켰고, 2월에 생일 선물로 뭘 줄까 묻는 이들에게 예산에 맞춰 운동 용품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난 수영강습용 5부 수영복, 자유수영할 때 입을 예쁜 수영복, 갤럭시 워치, 요가복 세트(이건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를 구비했다. 2월엔 실제로 새벽 수영반에 등록했고 월수금 빠지지도 않고 5시 40분이면 벌떡 일어나 수영장으로 직행하여 씩씩하게 준비 체조를 하고 물에 풍덩 빠졌다. 그렇게 삶을 구축하던 일상이 코로나19로 스포츠센터가 휴관하며 무너졌지만, 다시 개관만 하면 잽싸게 입금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요즘 하정우 배우에 대한 안 좋은 기사가 올라오고 있음에도 내가 『걷는 사람, 하정우』 를 각별히 좋아했다는 걸 숨기기가 어렵다. 일단 '걷는 거 좀 좋아하나보지' 다리 꼬고 평가자의 자세로 읽기 시작하다가 어느새 정자세를 갖추게 되는 책이다. 대학 후배라는 김준규 배우는 하루 16만 보 기록의 보유자다. 신사동에서 저녁 7시에 막걸리 한 잔 하기로 하면 경기도 광명에서 아침 10시에 출발하여 걸어온다. 전라도 광주에서 촬영이 있으면 3일 전에 대전까지 차를 타고 이동한 후 3박 4일 동안 걸어서 촬영장으로 이동한다. 하정우 배우도 만만치 않다. 한창 영화 <터널> 촬영으로 살을 뺄 때에는 심지어 강남부터 인천 공항까지 8시간에 걸쳐 걸어간다. 이런 영웅담을 듣고 있자니 내가 목표로 하는 하루 만 보쯤은 귀여워 보인다. 고작 우리 아파트 크게 두 바퀴 도는 건데 뭐!라는 마음으로 선뜻 엘리베이터를 타고 운동화 끈을 묶게 된다.



특히 운동이 루틴이 되는 삶의 양식이 마음에 들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아, 모르겠다, 일단 걷고 돌아와서 마저 고민하자'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간다. 걸으면서 여전히 고민을 고민하지만 슬슬 배가 고파온다. 집에 돌아가면 뭘 먹을지,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볼지 말지, 맥주를 마실지 말지로 고민이 바뀌어버린다. 집에 돌아와서 상을 차리면 이미 침이 고인다. '나 방금 전까지 고뇌했던 사람이 맞나? 왜 이렇게 밥맛이 좋지?' 깜짝 놀라게 된다. 밥을 먹은 뒤엔 샤워를 한다. 이제 계속해서 고민을 이어가려고 하지만 고민하기엔 너무 상쾌하다. 잠도 온다. 이 일련의 과정을 상상하자니 나까지 다 상쾌해져버린다.



그렇다면 꾸준히 걸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뭐든 꾸준히 하려면 그것이 '특별활동'이 아니라 습관이 되어야 한다며 하루에 3만 보를 걷는 하정우가 전수하는 팁은 다음과 같다.



- 생보: 생활 속 걷기(친구와 걸으며 이야기하기, 계단 이용하기)

- 제뛰: 제자리 뛰기("도대체 누가 텔레비전을 앉아서 봐?")

- 돌려깎기: 목표점을 향해 직행하지 않고 더 먼 거리로 돌아가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건 '걷기 친구'다. 하정우는 친구들과 걷기 모임을 꾸리고 핏빗으로 연결하고 국토대장정 다큐멘터리 <577프로젝트>를 함께 촬영하였으며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고 대화하는 수요 독서클럽으로까지 확장한다. 한동안 나는 이러한 '걷기 친구'를 만들고 싶어 눈을 반짝였다. 일단 H, S와 걷기 친구를 맺었지만 둘 다 집순이 집돌이라 걸음수가 형편없었고 금방 시무룩해졌다(물론 나와 걸음수가 막상막하긴 했다). 최근엔 맞은편 자리에 앉게 된 신규 중국어 선생님과 통성명을 하기도 전에 왼손 팔목의 갤럭시 워치를 발견하곤 "저랑 걷기 친구하실래요?"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여전히 말할 타이밍을 물색하고 있다). 주변에 공원이나 걷기 좋은 장소는 '몇 보짜리인지' 공유할 친구는 아직도 모집 중이다.



책의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 있다.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 『걷는 사람, 하정우』 中



앞으로 지낼 2020년이 더 기대되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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