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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가능하다

[도서] 무엇이든 가능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저/정연희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목요일의 늦은 밤, 혜화역을 향해 걷는 길이었다. S와 함께였다. 너라면 틀림없이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좋아할 거라고 몇 번이나 추천했던 사람이었다. 책을 훑어보다가 마지막 장에 있는 옮긴이의 말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인간을 성장시키고 회복시키는 것은 평가나 판단이 아니라 연민이라고. 연민이 우리 인간을 구원한다고. 연민은 인류에 대한 희망이자 사랑이라고.(p. 359)' 나에 대해 잘 아는 S는 역시 이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추천한 것 같았다. 그러나 생각보다 재미없었다. 나는 아직 2/3밖에 읽지 못했지만 밤길을 걸으며 섣불리 주제에 올렸다.



“오늘 하루 종일 『무엇이든 가능하다』를 읽었어.”


“어땠어?”


“별로였어. 너는 이게 왜 좋았는데?”


“음, 오늘도 다른 친구에게 그 책을 추천했거든. 뭐가 좋았냐고 묻는데 대답하기가 어렵더라.”


“그럼 만약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한다면 너는 어떤 질문을 할 것 같아?”


“이게 앰개시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씩 조명되는 연작소설이잖아. 근데 한 명 한 명이 정말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앰개시란 마을이 일리노이주에 진짜 있을 것 같았어.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할 것 같아. ‘인물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나요? 그렇다면 왜 그렇게 느낀 것 같나요?’”


“아무래도 인물들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다각도로 드러나서 그런 게 아닐까. 모든 인물이 어둠을 가지고 있잖아.”


“너에게도 어둠이 있어?”


“있지.”


“뭔데?”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워. 그냥 나는,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것 같아. 책에도 그런 말이 나오잖아. ‘사람들은 늘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게 느낄 방법을 찾는다’였나. 너는 어때?”


“나는 타인과 나를 비교한다기보다는, 스스로 확신이 있었거든. 나는 잘 될 게 틀림없다는. 그런데 공포가 생긴 것 같아. 이대로 아무것도 아닌 채로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어휴, 도대체 인생의 의미가 뭘까.”


“유시민 아저씨가 그랬잖아.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의미는 붙이는 거라고.”



S는 내가 이 책을 별로라고 생각할지 몰랐다고 했다. '너는 알다가도 모르겠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우리의 화제는 금세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저 멀리 혜화문이 변함없이 빛나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이 책을 기어코 다 읽었고, 마지막 단편이 특히 좋았고, 결국엔 이 책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그날 밤 내가 '나는 사소한 것에 집착하느라 큰 그림을 못 보는 것 같아.'라고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S가 단호하게 답했던 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중요한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결국 『무엇이든 가능하다』도 그런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앰개시에 살고 있는 인물 중 완벽하게 사랑스러운 사람은 없다. 모두가 비뚤어진 면을 지니고 있고, 누구나ㅡ심지어 자기 자신이라 할지라도ㅡ한 명의 오롯한 사람을 알 수 없고, 충만함이란 찰나일 뿐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분명 사랑스럽지 않은 너의 면모까지 사랑하며, 그러기에 괜찮다고, 모두 괜찮다고. 그 '괜찮다' 한 마디론 부족해서 350여쪽에 선물 상자처럼 담아낸 책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서 체크해둔 문장을 다이어리에 옮겨 적었다. 목요일 밤과 잘 어울리는 문장이었다. 이 책 덕분에 오래 간직하고 싶은 대화가 또 생겼다.




두 사람 모두 눈물이 고일 때까지 웃었고, 그래도 웃음이 멎지 않았다. 하지만 메리는 생각했다. 영원히 지속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앤젤리나가 이 순간만큼은 평생 간직할 수 있기를.


-「미시시피 메리」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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