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읽기를 권하는 책이다.
2.
첫 장을 펼치면 독자는 너로 호명된다.
너는 1980년 8월 광주에 있다. 용감하지도 비겁하지도 않은 너는 단지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자랐기에 그곳에 있다.
너는 친구를 생각한다. 친구는 친구를 생각한다. 친구는 누나를 생각한다. 친구는 언니를 생각한다. 그렇게 뻗어나가고 뻗어나가 우리는 모두 연결된다. 독자는 누군가에게 네가 되었다가 누군가에게 친구가 되었다가 누군가에게 누나가 되었다가 누군가에게 언니가 된다.
3.
지면이 충분한 장편 소설인데 한 번도 군인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지 않는다.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악의 평범성을 이해한다. 어쩔 수 없는 복합적 입장과 개인의 딜레마를 고려해야 한다. 인간은 애초에 불완전하기에 아무에게도 감히 돌을 던질 수 없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이 소설에서 군인들은 악하다. 시민을 도왔던 소수의 군인들은 언급도 되지 않는다. 본질을 흐리기 때문이다. 1980년 최고사령관뿐만 아니라 최전선에서 명령을 수행하고 사람을 고문하고 군홧발을 휘두르는 말단 군인들도 오직 악하다. 그들의 가족과 그들의 사정과 그들의 고뇌는 전혀 조명되지 않는다.
그 어느 평범한 악인에게도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면죄부를 주지 않겠다는, 너희는 죄책감을 느껴야만 한다는 작가의 단호한 시선이 바탕을 이룬다.
필요한 시선이다.
4.
- 『소년이 온다』 p. 59
소설의 분량치고 많은 이름들이 나온다. 지나치는 사람도 이름이 나온다. 한 명 한 명이 이름을 지닌 인간으로 존재한다. 지워버리지 않겠다는 오기가 느껴진다.
5.
- 『소년이 온다』 p. 117
우리는 그들에게 빚지고 있다.
6.
그런데 이름이 나오지 않는 '나'가 있다.
그때 나는 스물세 살 교대 복학생이다. 모나미 볼펜에 트라우마를 가진 나, 담뱃불로 지져질까봐 조는 게 공포였던 나, 죽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 나, 어쩌면 도청을 지키고 평생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한 낙관을 지녔던 나, 헌혈하려고 끝없이 줄 선 병원 입구와 트럭 위로 주먹밥과 딸기를 올려주던 여자들을 기억하는 나, 목청껏 함께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른 나, 총을 나눠 가졌지만 아무도 쏘지 않고 아무도 죽이지 않은 나, 복도에 머리를 박고 엎드렸지만 총기를 소지했으므로 등에 매직으로 극렬분자라고 쓰인 나,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날을 기억하고 분노하는 김진수에게 소주상만 차려주곤 이불을 덮어쓰고 돌아누운 나,
내가 날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나,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혼자서 싸우는 나.
누구나 '나'가 될 수 있다.
7.
책에서 중학교 3학년 학생의 목소리를 읽으며 우리 아이들이 떠올랐다. 중학생과 같이 읽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분이 계셨다. 역사를 전공하셨다는 분은 학창시절에 5.18 다큐멘터리를 보고 점심도 못 먹었다고 하셨다. 잔인한 장면이 아른거려 성인이 되어서도 자꾸 외면하게 되었다고 하셨다. 아이들에게 사실을 무작정 직시하라고 하는 것도 강요가 될 수 있다고, 눈높이에 맞춘 교육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10년 전부터ㅡ열다섯 살부터ㅡ채식을 하셨다는 분은 말씀하셨다.
"저는 채식을 결심했던 날이 생생히 기억나요. 네이버 도전만화에서 동물권에 대한 웹툰을 보았고, 호기심에 영상을 찾아보았어요. 동물 보호 단체인 PETA에서 도축 현장을 고발하는 영상을 올리는데, 5시간 동안 눈도 떼지 못하고 봤던 것 같아요.
그날 저녁, 아버지가 감자탕을 사 오셨어요. 그 감자탕을 보고 토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보기엔 너무 끔찍한 영상들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영상들을 또 볼 거예요.
잔혹한 현실을 강제로 보게 할 수는 없지만 알려줄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내가 겪지 않은 이 다양한 경험들을 듣는 시간이 소중했다.
8.
제목 『소년이 온다』는 무엇을 의미할까?
- 진실이 온다.
- 잃어버린 소년이, 소년의 기억이 온다.
- 죽은 어린 영혼이 가해자의 잘못을 기억하기 위해 다시 온다.
-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리로 쏟아져 나간, 인간이기 때문에 나간 순수한 사람들이 온다.
- 정미는 동생이 올 거라고, 동호는 정대가 올 거라고, 엄마는 동호가 올 거라고, 그렇게 올 거라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기다리던 사람이 온다.
- 이념이나 사상 때문이 아니라, 양심이나 도덕이나 민주주의 같은 건 몰라도, 인간이면 이러면 안 되기 때문에 움직였던 순수한 영혼들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