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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으로 일주일 반찬 만들기

[도서] 만원으로 일주일 반찬 만들기

송혜영(욜로리아)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자취 10년 차, 여전히 '밥 해 먹는다'라는 다섯 글자를 읽으면 한숨부터 나온다. 냉장고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밥을 안치고, 불 앞에서 프라이팬을 올리고, 상을 차려내고, 남은 음식을 보관하고,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를 뒷정리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그 일련의 행위를 오롯이 나를 위해 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가진 몇몇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시간이고, 금 같은 시간을 사용하는 우선순위 목록에서 살림은 저 아래 중에서도 밑바닥에 있다. 청소하는 시간도 밥 하는 시간도 책 읽는 시간보다 아깝다.


조용히 공부하고 있으면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던 시절은 한참 전에 지났다. 열아홉 살에 상경하여 학생식당을 전전하던 시기를 지나 평범한 날엔 라면, 건강하게 먹고 싶으면 사골 라면, 특별한 게 먹고 싶은 날엔 짜장 라면을 돌려먹던 시기도 지나 만두나 냉동 곤드레밥 같은 간편한 레토르트 식품을 빵빵하게 채워두던 시기를 보냈고 지금은 볶음밥, 카레, 비빔국수처럼 간단한 요리들을 해먹는 시기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상차림에 익숙하다. 반찬을 여러 개 만들 재간도 없을뿐더러 괜히 여기저기 손댔다가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번의 냉장고 대참사를 겪으며 점점 아삭아삭한 식감을 포기하게 되었다. 아삭아삭하다는 것은 신선하다는 것이고, 신선하다는 것은 보관 기간이 짧다는 뜻이었다. 밑반찬은 내게 사치품이었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무기력해졌다. 이 시기에 접한 재테크와 자기계발 서적은 가뭄의 단비 같았고 나는 새벽 기상부터 시간관리 바인더, 통장 정리까지 목마른 사람처럼 흡수해나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연애도 직업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굉장히 만족스러우면서도, 만족스럽기 때문에 내 인생이 이대로 늙어갈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여하튼 나에겐 변화가 필요했고, 그렇게 시작한 새로운 루틴 중 하나는 매일 30분 동안 음악을 들으며 살림하기였다. 그전에는 청소를 하면서도 시간이 아까워 팟캐스트를 들었는데 지금은 정말 청소하는 시간 그 자체에 집중한다. 옷장을 털어내고 냉장고도 정리했다. 그리고 스테인리스 보온 도시락과 함께 『만 원으로 일주일 반찬 만들기』 책을 들였다.


이 책의 목차에서 눈에 띄는 것은 감바스알아히요나 콩나물불주꾸미볶음 같은 식탁의 중앙을 차지하는 메인 요리가 아니다. 콩나물무침, 양파장아찌, 미역줄기볶음과 같이 식탁의 가장자리를 차지하지만 자취방에선 흔히 보기 힘든 밑반찬들이었다. 어릴 적 좋아하던 반찬들을 엄마든 반찬가게든 애인이든 누구에게도 바라지 않고 이제야 내 손으로 직접 해먹었다. 생각보다 너무 쉬워서 깜짝 놀랐다. 이처럼 쉬운데도 해본 적 없다는 이유로 '나는 못해'라고 스스로 한계 짓고 있었다.


'기본 양념' 코너도 좋았다. 진간장, 양조간장, 국간장의 차이점은 늘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양조식초와 2배, 3배 식초의 쓰임이라든지 꽃소금, 천일염, 맛소금의 용도, 참기름, 들기름의 용도도 새롭게 이해했다. 맛술이나 멸치액젓은 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것들이었다. 고춧가루라는 양념에 '요리에 매운 맛과 색을 더해줍니다. 음식 종류에 따라 굵기와 색깔, 맵기가 다른 고춧가루를 사용합니다. 요리 초보가 사용하기에는 가는 고춧가루가 적당합니다.'라는 설명을 읽으면 나의 부유하던 일상이 드디어 뿌리내리는 느낌이었다. 안주의 뿌리가 아니었다. 내가 당장 나를 만족시키는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곳에 떨어지더라도 나의 하루를 지켜낼 수 있는 생활의 기술을 의미하는 뿌리였다.


여전히 '밥 해 먹는다'라는 다섯 글자를 읽으면 긴긴 과정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 과정 하나하나에서 이제 일상과 변화를 세심히 느낀다. 같으면서도 다른, 다르면서도 같은 집밥을 내 손으로 만들고 내 손으로 살림을 꾸리다 보면 결국 내 삶도 유연하게 흐를 것이다. 어릴 적 꿈꾸던 드라마틱한 인생의 반전은 아닐지라도, 내 삶을 더욱 내 삶으로 만들어나가는 변화다.




▼ 32쪽을 보며 요리한 늦은 저녁, 매콤한 두부조림과 김치볶음, 갓 지은 잡곡밥





▼ 28쪽 콩나물무침과 214쪽 미역줄기볶음. 반찬 여러 개를 만들어두고 아삭하게 꺼내 먹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벌써 충만해진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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