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기독교에 입문한 약 10년여전에 한창 시크릿블라 하는 책이 교회내에서 대대적으로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전 그때 초신자였기에 별로 아는 것도 없는 (지금도 마찬가지긴 함) 꼬꼬마였는데, 그런 제 눈에도 그 책이 유행하는게 좀 웃겨보였다. ktx 타고 가면서 봐도 이건 개신교의 윤리와 완전히 어긋난 사상이 총망라된 잡종교 섞어믹스 찌개 잡탕인데 이걸 권사 장로 집사 청년 할 것 없이 은혜로운 책이라며 서로 선물했다.
개중에는 모태신앙도 있고 수십년 교회를 다니고 봉사를 하고 성경공부, 성경 몇 독, 기타 업적 수두룩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내가 교회를 몇 년 다니면서 느낀것은
너무 많은 자칭 기독교인들이 감정과 체험에서 비롯된 일차원적 맹신에서 더이상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평신도는 말 할것도 없고, 목사들 설교만 들어도 내 아빠가 하던 말인
"원래 옛날에 공부 못하는 애들이 다 신학대 가고 그랬다." 라는 비아냥이 현실로 느껴질 만큼, 판에 박힌 설교, 어디서 배낀 설교, 고리타분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저거 사이비 아니야? 싶을 정도로 자의적 해석,
사회의 도덕윤리와 뭐가 다른가 싶은 설교는 그나마 양반이고 기복주의에 세대주의까지 짬뽕돼갖고 듣고있으면 참으로 시간이 아까워지는 설교가 태반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같네요. 미안합니다.
설교자들, 너무 나태하다. 세금도 안내는데 이런 책이라도 보면서 당신의 복음이 무언가에 대해 제발좀 성찰의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물론 당신의 그 악행으로도 양 한마리 타락은 못시킨다. 왜냐면 주권자는 따로 있으니.
단지 다혈질인 나의 심기를 너무나 거스를 뿐, 당신의 악행은 그의 영광에 작은 누도 끼치지 못하기는 하지만 근데 내가 화가 남.
내가 초신자 시절 이런저런 책을 볼 때면, 자매님은 머리만 큰 신앙인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받곤 했고, 실제로 어쩌면 내가 그런 부류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나의 미흡함은 차치하고, 난 사람들이 제발 공부좀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책이 공부하기에 참 좋은 책이다.
일단 가장 흥미를 끌었던 점은, 첫장에서 말하는 칸트의 사상 중, 현상계와 실재계에 관한 이야기.
제가 바로 그 칸트사상에 젖어서 회의에 빠진 기독교덕후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궁극이므로, 한정된 인간의 지식으로는 절대 포착할 수 없고, 죄인됨 상태의 철저한 무기력에 굴복하다못해 지하 암반수 파고 들어가서 엄청난 회의에 빠진 그런 사람이 바로 접니다.
확신에 찬 천국입주확정자들은 너무 피곤하다.
이 책이 얼마나 내 개인적 신앙관과 부합하는지는 아직 단정지을 순 없지만, 적어도 이렇게
논리적이고, 또 그 논리를 구축하기 위해 저자가 기울인 심혈이 느껴지는 책들은 그 자체로 귀하다.
물론 책이 좀 어렵긴 하다. 근데 난 간증집 너무 지겨워. 이런 책좀 많이 내주셈.
기독서적에도 종이값 아까운 책이 오조오억권이다. 하여튼 그래서 이책은 별 5개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