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약간 우울하거나 복잡한 머리를 쉬게 하고 싶을 때,
또는 갑자기 생긴 여유를 뜻깊게 흘려보내고 싶을 때 펼치게 된다.
그렇다고 그녀의 책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덜 유명한 책 중에 내가 좋아하게 된 책이 더 많다.
가장 유명한 <키친>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때를 놓쳤다 싶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은 더 손이 안 가나 보다.
도토리를 뜻하는 '돈구리'라는 단어를 나눠 가진 돈코, 구리코 자매는
어려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면서 삼촌댁, 이모집에 얹혀 살다가
고집 센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비로소 둘만 오롯이 한 집에 살게 된다.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다소 어둡고 힘든 삶을 경험했을지언정
인간에 대한 도리라든가 원칙 같은 것은 꽤 잘 지키고 따르려는 모습이
뭔가 안쓰럽다가도 기특해 보였다.
취향도, 성격도 전혀 다른 두 자매가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다른 누군가를 위해 도토리 자매 홈페이지를 만드는 과정은
흥미로우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뭔가가 있다.
정답은 아닐지라도 경험 등에 기대어, 또는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전하는 따뜻한 위로는
메일을 보내는 사람에게도 쓰는 사람에게도 삶에 울림을 준다.
구리코의 첫사랑이 죽었음을 꿈으로, 현실로 인지해 가는 과정에서는
삶과 죽음에 대한 요시모토 바나나의 일관된 철학이 엿보이기도 한다.
도토리 자매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으나
크게 걱정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 나름의 규칙과 삶에 대한 자세가
단단해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정답은 아니더라도 해결의 실마리라도 얻고 싶은 일이 생길 때
도토리 자매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