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일기>는 작가가 십년에 넘는 기간 동안
쓴 일기기 묶여 있는 에세이다.
10년이란 시절의 일기를 관통하는 것은
'죽음'이라는 키워드다.
특히 2014년 4월 이후에 쓴 작가의 일기에는
죽음과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에 천착하는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
2014. 6. 28
이십 년도 더 넘게 소설을 쓰면서,
나는 타인의 죽음을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들어가도 되냐고 묻고 또 물어도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건,
그 누구도 타인의 죽은음커녕 손가락 끝으로 파고든 가시만큼의 고통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진실 뿐이다. 타인의 고통과 그의 죽음은 그통한 견고한 것이라
결코 이해되지 않은 채로 우리 마음속에 영영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분명히 괴로운 일이리라. 누군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한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남은 삶은 계속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세월호' 참사는 작가를 절망케했지만, 작가는 그럼에도
글을 계속 써서 견뎌야 한다고 답을 낸 것 같다.
p.94 (2015. 4.15)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둠만을 볼 뿐이다.
그게 바로 인간의 슬픔과 절망이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이 이 세계를 다르게 보려면 빛이 필요하다.
슬픔에 잠긴 마리아 막달레나와 절망에 빠진 두 자제가 처음에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건, 그래서 당연하다. 그 상황에서
예수를 알아본다는 건 빌을 알아본다는 뜻이고, 이 세계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어떻게 하면 슬픔과 절망에서 벗어나 이 세계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하룻밤 자고 일어났더니
온 동네 꽃들이 모두 피어나던, 내 고향의 부활절 풍경이 그런 새로운 빛 속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
이 책은 어둠이 깊은 시절,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에 대한
작가의 깊은 물음이 담겨있는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