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편을 이틀에 걸쳐 토막토막 나눠 보았습니다 . 얼른 봐버리면 어쩐지 안될 거 같아서요 . 사계절은 순식간이지만 각 계절 안에서 얼마나 느리고 천천한지 , 그리고 치열한지 모르지 않기에 깊은 숨을 내쉬듯 그렇게 천천한 걸음으로 따라가 보고 싶었달까요 ? !
영화의 평이 좋아 더욱 천천히 보고 싶었던 마음도 한 몫 합니다 . 거품인지 거품일지 모르는 흥행의 순간은 애써 놓치고 싶더라고요 . 뭐 , 저는 워낙 느린 사람이라 핑계를 그럴 듯하게 대는 건지도 모르지만요 .
어떤 면에서 영화는 과도한 음향을 배제한 농촌 다큐로도 보입니다 .중장년층의 귀농이 아닌 , 아직 젊은 청춘들이 펼치는 귀농의 사계절 다큐 같은 면도 있어 보이고요 . 영화는 카메라를 인물 중심으로 잡고 평범한 일상을 필사하듯 천천히 또박또박 적어서 보여줍니다 . 영화 속 배우의 발음이 또릿또릿한 것도 영화를 그리 보게 만드는 면도 있지 않나 그럽니다 .
촌이라 시내까지 4~50분이 걸린다는 말엔 , 음 ... 신기했습니다 . 우리는 보통 시내에 살아도 휴대폰으로 마트에 전활 걸어 생필품 주문을 하고 배달을 받는데 하면서요 . 바쁘지 않아도 나가는 데 그만한 시간이 걸리면 외출을 하느니 , 배달 주문을 선택하지 않나요 ? 모르겠습니다 . 그것도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하고 접어 둡니다 . 장작을 직접 패고 , 언 땅에서 눈 속에 묻힌 배추를 뽑고 , 파를 뽑고 , 아! 저는 그런 시골 출신(그땐 전화기도 귀했던 시절인데! 엉뚱한 비교이긴 하네요 ~)인데 까마득하게 잊고 살던 면이기도 했습니다 .
또 , 휴대폰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데 이 영화에선 소통 수단을 쪽지나 편지로 대신합니다 . 어떤 면에선 약속없이도 무시로 드나드는 이웃들이 자연 바람 같기도 했습니다 .
어릴 적 친구네 집이 산중턱에 있어서 , 어른들이 모두 출타해 친구와 함께 그 집에서 밤을 보내본 적 있는데 산골짜기의 밤 , 소리가 그렇게나 클 수 있단 사실에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 낮엔 전혀 못느낀 숲의 웅장함을 밤의 비밀이 드러내 줬던 듯이 , 계곡 물 소리가 천둥 같았고 휙하니 나무 하날 쓸고 가는 바람 한점도 태풍같기만 했는데 새벽녘이 되니 잠에 빠진듯 조용해지는 산을 보며 얼마나 놀랐던지 !! 극 중의 혜원이 혼자 누운 밤을 이리저리 뒤척이는 장면에선 어릴 적 경험이 슬몃 떠올랐습니다 .
그리고 가장 고대한 밤절임 장면 !( 이건 이웃님의 리뷰 때문에) 일본 판 영화에선 다들 각각의 절임을 해서 나누는 장면으로 나오는데 이 영화에선 그 장면을 생략했네요 . 촌 인심과 외진 곳이어서 사소한 것도 축제처럼 즐기 수 있단 걸 밤절임으로 표현했던 걸로 기억했던지라 살짝 아쉬웠습니다 . 그렇지만 일본의 촌과 이 나라 촌의 삶이 나고 자라는 작물이 다르듯 , 비슷하긴 해도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되기도 하더라구요 .
언제나 돌아 올 (갈) 수 있는 곳이 있는 사람 . 잠시 떠나도 그것을 아주심기 하는 중이라고 말해주는 이웃의 친구들 . 그런 걸 마음의 고향이라고 하는 거겠죠 ?
성과주의 세상을 각박하게 사느라 , 눈에 바로 보이는 결과를 내놓지 않으면 낙오한 사람으로 인상지어 지는데 , 농촌에서의 순환은 기다림의 시간이어서 , 결과가 나올 동안 손질을 여러번 해주며 저 나름으로 땅을 뚫고 나오길 , 열매가 맺기를 응원하는 것이 다입니다 . 그러니 오래 잘 기다리는 사람이 대게 경험으로 좋은 결과를 맺지 않나 싶었고요 .
꼭 농사만의 이야기는 아닐겁니다 . 아주심기로 가기 전 부들부들한 여린 싹 . 그건 아직 뭔가에 닿지 못한 사람들 , 그들의 시간 같았습니다 . 우리가 뭔가를 견디며 보내는 시간을 그렇게 표현해준 것이 고마웠습니다 . 우리는 우리 나름의 성장을 하고 있는 중이겠죠 ? 그것이 단박에 표나는 결과물이 아닐지라도 ...
이 영화는 시간을 품게 하는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 조금 힘든 일이 생겨도 , 견딜 수 있고 견딜 만한 거라는 메세지도 전해들은 듯한 기분 , 눈처럼 차갑지만 마음은 푸근한 그런 영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