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ㅡ 영화
잔뜩 벼르고 봤는데 ,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이번엔 책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
정작 책을 읽고 나선 그 리뷰는 아주 간결했던가 ... 그것도 바로 쓰지도 못했다 . 멍 때리느라 . 책을 덮고는 바로 느낀 건 ㅡ 이게 뭐지... 뭐야... 흣 !
두께가 그리 되지 않던 책은 순식간에 읽혔었다 .
기억을 잃어 본 적이 없는 나는 , 대게의 우리는 그의 , 소설 속의 살인자 입장에서 서서 온전한 자각을 제대로 하기 힘들다 . 그러므로 그냥 그렇구나 . 그렇다고 하며 지나가게 된다 . 그리고 그게 일반적인 반응일게다 . 이른바 정상이라고 하는 ...
영화도 그렇지 않던가 ? 뭐 , 순식간에 뭐가 휙 지나가듯 왔다 간다 .
뭘 본 건지 모르게 ... 영화가 끝나고 , 잔상으로 남은 건 , 병수가 은희를 애타게 찾으러 영화관에 가서 은희야 하고 부르다 순간 빛 때문에 기억을 놓치고 앉아서 영화를 보며 , 타인들과 섞여 울고 웃는데 ... 그게 엇박자였다는 것과 ... 그러면서 끝 부분 ( 나래이션부분 )에 '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냐 ' 하는 말이 , 병수가 아닌 설경구의 목소리로 들렸다 .
그 순간엔 , 영화 속 병수가 아닌 인간 설경구가 , 뭔가 잊고 내가 뭘 잃은 거지 하는 듯한 ... 뭘 놓친 거지 하는 , 그런 목소리로 순간 들려서 ( 완전 내 착각이겠지만 , 그럴리 있겠어 ? 내가 무슨 독심술을 하는 것도 아닌데 ... ) 회한이 너무 짙어 나도 모르게 철렁했다 .
노인이 다 된 사람의 회한 같지 않았다 . 그건 그냥 그 사람이 가진 고뇌 같았달까 .
하긴 누군들 , 길을 잃어 보지 않은 사람이 있나 ... 한번 쯤 다들 그런 적 있으니 . 그런 목소릴 낸다는 게 이상하지 않을 수도 ...
암튼 , 영화가 끝나고도 아직 나는 계속 그 남은 목소리에 갇혀 있나 보다 .
소설은 소설 , 영화는 영화 늘 , 그렇게 생각한다 . 서로 꼬리잡기를 하듯 호기심의 한 쪽 끝을 절대 놔주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 서로가 서로에게 줄을 대 이어줘야 하는 영역이기도 하고... 이런 부분은 ...
연출에서 감독의 욕심으로 살인자의 기억법은 화면 속에서 감각적이고 회화적이다 .
기억이란 것이 대게 연상의 도움을 많이 받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 아니다 . 내가 그저 그리 읽는 것 뿐이다 .
소설도 하얀 건 종이에 까만 건 글씨이듯 , 하얀 빛 다음엔 까만 암전 ...
가장 가까운 기억의 소실과 현재를 뚝뚝 살라먹으며 , 과거로 가는 자의 모습이 있다 .
과거로 가는 자에겐 , 그게 저주일까 , 축복일까 ,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일까 . 또는 운명 ? 그런 걸까 ?
그리 크지 않은 소도시 , 연쇄 살인범이 둘 .
하나는 17년 전을 끝으로 살인을 멈췄다고 한다 . 하나는 이제부터 알게 될 것이다 .
민태수 , 영화 속에선 엄마를 구하고자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들이대다가 오히려 엄마로부터 호되게 당한 인물로 그려지면서 여자들을 향한 살인의 타당성을 얻는 인물로 그려진다 .
김병수 ,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늘 어두웠던 집안에서 여자들을 지키고 자신도 살고자 아버지를 죽이게 된 인물 , 누이가 자살을 하고 어머니 역시 더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여자들을 믿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 않나 싶다 . 은희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가 많은 걸 보여 주는 듯 싶었다 .
그의 치매는 물론이고 착란은 더 오래 전에 있었을 것 같다 . 치매 후부터 온 거라고 봐야하나 . ( 이 부분이 소설에서 어땠나 ..기억이 나지 않아서 ..ㅎㅎㅎ )
암튼 , 첫 장면도 그렇고 , 마지막에 긴 터널이 나오며 ( 이건 오마쥬 같다. 박하사탕 ㅡ 나 다시 돌아갈래 ! 생각나잖아, 딱 그 배우에, 그런 공간 ) 돌연 깨끗한 운동화 ㅡ그리고 너무 마른 병수 앞 쪽으로 이미 죽은 민태수 ( 태주? : 김남길) 가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하는 자세를 하고 서 있다 .
' 넌 나를 못 이겨... ' 하듯 .
그래서 , 대사는 없었지만 이 부분의 대사가 있었다면 바로 그거였을 게다 . 역시 나래이션으로 병수의 목소릴 내야겠지 ..
'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 시간이지 .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 '
무너지는 시간도 그렇지만 , 먼저 죽어버린 시간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