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크눌프를 알게 됐을 땐 자유로운 그의 삶이 마냥 신기하고 부러웠다. 계속 그의 여정을 함께 하며 그를 알아가면서 나는 그가 구경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가 많은 아름다움에 연민을 느꼈듯이 나는 크눌프의 삶에 연민을 느꼈다.
길은 언제나처럼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고 어느 길을 걷는가는 크눌프의 선택이었다. 단지, 크눌프는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은 무감함을 삶은 그저 알았다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크눌프는 찬란한 자신의 삶을 겉돌고 있었을 뿐, 자신의 삶을 배회하는 국외자가 되었다. 그 스스로. 아름다운 젊은 날이 지나가고, 눈밭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크눌프의 모습을 보며 자기 삶에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삶이 얼마나 겉만 맴도는 안타까운 일인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유롭고 사랑에 충만하면서도 자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진 그였다면 그의 아름다움은 더 길어졌을까. 어쩌면, 짧은 아름다움이었기에 크눌프가 더 기억에 강하게 박혔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것의 유한함을 늘 사람들의 마음에 연민을 불러 일으키고, 연민이 담긴 대상이 쉬이 잊히지 않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