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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선생 선비정신 학생교육은 다음과 같이 이어지는 포스팅입니다.

(1~2는 네이버, 3~6은 예스24 블로그에 탑재할 예정입니다.)

 

1. 원주시 자원봉사센터  : http://blog.naver.com/yyhome53/220077937053

2. 봉선루 : http://blog.naver.com/yyhome53/220079470564

3. 운곡선생 묘역과 석경사 (1) : http://blog.yes24.com/document/7762865

   운곡선생 묘역과 석경사 (2) : http://blog.yes24.com/document/7771833

4. 각림사 터 :

5. 노구소 :

6. 태종대 :

운곡선생 묘역을 답사 중인 원주여중과 반곡중학 학생 70여 명과 동반한 나는

잠시 짬을 내서 묘역 경내에 있는 석경사를 찾았습니다.

석경사는 운곡 선생의 얼이 깃들어 있는 고찰이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검색이 안 되는군요.

 

모운재(慕耘齋)

운곡 선생 묘소 왼쪽에 있는 모운재입니다.

처음에는 이곳이 석경사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집은 모운재라는 이름 그대로 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입니다.

재실 앞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연못 위쪽으로는 선생의 시조 4수가 새겨진 시비가 있으며,

재실 뒤쪽으로 석경사가 있습니다.

 

석경사 가는 길

모운재 바로 뒤로 석경사가 있습니다.

길이라고 할 것도 없이 모운재 바로 뒤에

창고 같이 작게 지어진 집이 석경사입니다.

 

석경사

치악산의 고찰 중에 한 곳이라고 해서

석경사가 상당한 규모의 대찰인 줄 알았습니다.

모운재 뒤에 있는 이 작은 암자가 석경사라고 합니다.

방 두 칸 크기의 작은 실내에 관음전과 명부전이 함께 있습니다.

불상과 명부전의 왕들을 함께 모신 법당은 이곳에서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모운재와의 거리가 10미터도 안 되므로

정면으로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 위치였고요.​

 

관음전과 명부전

세 분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었습니다.

방의 경계가 없이 오른쪽으로 명부전의 불화가 있었고요.

 

운곡 원천석 선생 시비

석경사, 모운재, 운곡 원천석 선생 시비의 위치가

같은 구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접해 있었습니다.

 

창의사

내가 석경사를 돌아보는 동안 창의사에 들어간 학생들은

원현식 선생으로부터 운곡 선생의 생애와 정신에 대해서 듣고 있었습니다.

 

운곡선생 영정

창의사에 모셔진 운곡선생의 영정입니다.

햇볕에 반사되어서 선생의 영정을 카메라에 담기가 힘들었습니다.

 

운곡 묘소로 가는 길

창의사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됩니다.

 

운곡선생 묘소

뒤로 보이는 묘소가 운곡선생 묘소입니다.

묘소로 가기 전에 시원한 솔밭그늘에서 원현식 선생님의 강의가 이어졌습니다.

 

원현식 선생님의 강의

운곡 묘소에서 운곡의 후손이면서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위원이신 원현식 선생님에게

운곡의 추억을 듣고 있습니다.

이 학생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지요.

 

운곡선생 묘소와 묘비

'고려국자진사원천석지묘(高麗國子鎭士元天錫之墓)'라는 간단한 묘비에서

선생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들어섰지만 불한당들을 인정하지 않은 선생이었습니다.

묘비에는 오직 '고려국의 진사'라고 적으라고 한 그 기개가

우리 원주의 마음으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원현식 선생의 말씀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운곡선생의 정신을 조금이라도 더 학생들의 가슴에 심어주려는
간곡한 정성이 느껴졌습니다.

 

운곡선생의 묘갈

운곡 선생의 생애를 적은 옛 비석으로 묘소의 오른쪽에 있었습니다.

묘갈의 내용을 풀이하면 음과 같습니다.

 

선생은 원주 사람으로 성은 원(元)씨요. 이름은 천석(天錫)이고, 자는 자정(子正)이며, 고려국자진사(高麗國子進士)이다. 고려(高麗)의 정치(政治)가 어지러워지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숨어살면서 호(號)를 운곡(耘谷)이라 하였다. 선생은 고려(高麗)가 망하자 치악산에 들어가 종신(終身)토록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태종(太宗)이 여러 번 벼슬길에 나오라고 불렀으나 나오지 않자 그 절의(節義)를 높이 추앙(推仰)하여 선생의 초막을 찾았을 때 선생은 이를 피하고 만나지 아니하였다. 태종(太宗)이 계곡 바위에 올라 선생의 거처를 지키는 노파를 불러 후사하고 선생의 아들 형(泂)에게 기천현감(基川縣監)의 벼슬을 내렸다. 후인(後人)들이 그 바위를 태종대(太宗臺)라고 하였는데 치악산 각림사(覺林寺) 근방에 있고, 지금 원주(原州)시가지 동쪽 10리쯤 되는 거리인 석경(石鏡, 石經이라고도 쓰고 우리말로는 돌갱이라고 함)에 운곡(耘谷)선생의 묘(墓)가 있으며 선생의 묘(墓) 앞에 있는 묘(墓)가 부인의 묘(墓)라고 이르고 있다.


선생에게는 6권의 저서(著書)가 있었는데 이는 고려(高麗)가 망할 때에 일을 기록한 것이라 자손(子孫)들에게 함부로 열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여러 대가 지난 뒤 어느 자손(子孫) 한 사람이 하도 궁금하여 몰래 열어 보고는 크게 놀라 말하기를 "이 책(冊)은 우리 가족에게 관한 일"이라고 말하고 불살라 버려 지금은 이 책(冊)이 전(傳)하지 않고 다만 남아 있는 시집(詩集)이 있었으니 이른바 이것이 시사(詩史)이다.


내가 듣기로는 군자(君子)는 은둔(隱遁)하여도 세상을 버리지 않는다 하였는데 선생이 비록 세상을 피하여 스스로 숨어 살았으나 세상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며 도(道)를 지킨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몸을 깨끗하게 함이다.

 
백이(伯夷)의 말에 "옛날에 선비들은 잘 다스려진 성세를 만나면 그 맡은 바 임무를 피하지 아니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면 구차하게 살지 않는다 하였으니 천하가 암울하니 이를 피하여 깨끗하게 내 지킬 바를 지킴만 못하다." 하였다. 이런 탓으로 전(傳)에 이르기를 날이 추어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홀로 푸르름을 알게 되고 세상이 어지러워진 뒤에야 맑은 선비를 알아보게 된다.

맹자(孟子)에 이르기를 " 백이(伯夷)는 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고 그 백성이 아니면 부리지 않고 잘 다스려진 세상에는 나아가고 어지러운 세상에는 물러났으니 백이(伯夷)는 성인(聖人)으로 청백(淸白)한 사람이다." 하였으니 선생은 백이(伯夷)에 견줄만한 사람이다.

부인 원씨는 선생과 같은 원씨가 아니니 원주(原州)에 두 원씨가 있다는 것이 이것이다. 장남 지(沚)는 직장동정(直長同正)이고, 차남 형(泂)은 기천현감(基川縣監)이다. 선생의 후손(後孫)들이 매우 많으나 기천현감(基川縣監)의 후손(後孫)이 더욱 많다.

찬(贊)하여 이르기를 뜻을 세워 암혈(巖穴)에서 사는 선비도 나아가고 물러날 때가 있고, 세상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뜻을 굽히지 않았도다. 그 몸이 욕되지 않았으니 후세(後世)에 모범(模範)이 되어 우직(禹稷)과 이제(夷齊)와도 같으니 선생은 과연 백대의 사표(師表)이다.

 

이곳에서의 일정이 끝나면 선생과 조선 태종과의 갖가지 비화가 숨쉬고 있는

강림의 노구소와 태종대로 가게 됩니다.

 

답사객과 운곡 선생

왼쪽 솔밭에서 운곡 선생의 생애를 배우고,

운곡 선생은 오른쪽에 묘소에 누워서 자신을 찾은 훙린들을 바라봅니다.

 

운곡 선생의 기개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가슴에 속속들이 스며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운곡선생님께 예의

원현식 선생은 위인을 찾았을 때는 큰 절을 해야 하지만

장소가 편안하지 못하니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마음을 표하자고 하셨습니다.

 

묘소를 내려가면서

잠시 운곡선생의 뜻을 생각하였습니다.

 

다음 일정은 운곡선생과 태종, 그리고 늙은 노파의 비극이 서려 있는

강림의 각림사와 노구소로 가게 됩니다.

 

운곡 선생 묘역 주변(지도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과 약도를 함께 보시면 위치를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원주시자원봉사센터는 학성동주민센터와 인접해 있으며,

건물 위에는 ​'원주시사회복지센터'라는 간판이 크게 붙어 있습니다.

* 자료 출처 : 사진은 2014년 7월 30일의 풍경이고,

  글은 개인적인 생각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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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아자아자

    영정이 매우 사실화에 가까워 보입니다. 예전 영정은 좀 덜 사실적으로 보였는데...
    연못의 연잎들에 눈길이 가네요.

    2014.08.13 21:0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목연

      최근에 새로 복원한 듯합니다.
      아무튼 원주에서는 대단한 분입니다.
      한 사람의 정신이 나라가 몇 번이 바뀌는 동안에도
      변치 않고 한 도시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으니...

      2014.08.1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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