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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도서]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고봉준 등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시인 김수영의 '무수한' 반동을 좋아할,

시인 김수영을 깊이 있게 알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무슨 과에요?"

묻는 질문에는 고민 없이 "국어국문과요."라고 대답한다. 부전공도 아닌, 복수 전공으로 커뮤니케이션 저널리즘 학부에서 공부했으면서도 그렇다. 생각해 보면 "국어국문과"에서의 시간에서 나오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수많은 '국어'와 '국문'을 다루다 보니, 문득 책으로 마주한 김수영 시인이 반갑기도 하면서 어디선가 '흐어'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때 봤던 시험 중 하나가 시인 10명 정도의 생애를 전부 외워서 시험지 앞뒤로 꽉꽉 채워야 하는 것이었다. 하얀 백지 하나에 시인들 이름 하나 올려놓고, 그때부터 마인드맵을 그려가며 온갖 세세한 삶을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그들의 무수한 가지들을 제멋대로 정한 단어로 묶어버린 것이었을 수 있다. 나이, 가족관계, 출생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시를 몇 년도에 썼는지, 시의 흐름이 어디서부터 바뀌었는지를 글자 몇으로 정리했다. 백지는 꽉 차 들어갔지만, 내 머릿속은 어땠을까.

그때가 생각나서 멈칫하다가도, 새삼스럽게 이 책이 반가웠다. 그때 주구장창 읽어댔던 논문들보다 훨씬 다정하고 찬찬히 다가온 느낌이었다. 어쩌면 타이밍이 좋았을지 모른다. 나도 이 무수한 반동을, 이제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


[한 자락 恣樂]

예측 가능하며 순차적인 진행의 결과인 "설움의 귀결"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설움이 없"는, 어떤 원인이나 근거 없이 피어나는 게 꽃이다. 달리 말해, "어지러운 가지"에 "피어오른" 한 송이 꽃은 끊임없이 "중단과 계속"을 거듭한다는 의미에서 '무(無)'라고 할 수 있는, 끝없는 생성의 흐름을 가리키는 존재의 율동 속에서 피어난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97쪽


이 책은 2021년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겨레》가 기획·연재한 글 26편을 모은 것이다. '거대한 100년, 김수영'이라는 타이틀 아래 연재된 이 글들은 가족, 전통, 구수동, 여편네, 니체, 전쟁포로 체험, 돈, 비속어, 온몸, 죽음, 사랑, 풀 등 26개의 주제를 다룬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서문 中

ⓒ 849356, 출처 Pixabay

각각의 단어로 꾸려진 글들은 모두 한 사람, 김수영 시인을 움직이게 한다. 반동, 제목처럼 김수영 시인을 진자운동 시킨다. 가족으로 던져진 첫 구슬은 유교로, 일본과 일본어로, 만주 이주로 움직인다. 이후 계속해서 삶을 이어나가는 26가지의 단어들은 마치 퍼즐처럼 김수영 시인의 부분부분을 완성해나간다. 짧지만, 누구보다 김수영 시인을 깊이 있게 파고든 글은 새삼스럽게도 단정하고 심도 있었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원고들의 빛바랜 사진들은 앳되고도 애틋하다. 주제 아래 놓인 시의 솔찬함이 느껴져, 더욱 그 배경에 집중하며 글을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여느 때 보았던 김수영 시인의 모습은 표지에서 보이듯이 점점이 찍힌 것들로 흐릿해진다. 어쩌면 선이 희미해지는 시인의 모습에서 더 선명한 점 하나하나를 기억하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23쪽


3. 일본, 일본어

_망령 씐 '식민지 국어'라도 맘껏 부려 썼다

기억하지 않고 싶었던 건지 배우지 못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김수영 시인의 일본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해방되자마자 금지된 일본어는 과연 '친일파'를 걸러낼 수 있는 기점이 되었을까?

김수영, 김종삼, 이병주, 장용학 같은 1921년생은 해방이 되던 해 스물다섯 살까지 식민지 국어(일본어)를 써야 했다. 김수영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일본 괄호'에 갇혀 고투했다.

이 무수한 반동이 좋다, 34쪽

여전히 일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엔, 걸리는 것이 많은 지금도 우리는 꽤 깊이 뿌리박힌 일본어를 발견할 때마다 눈썹을 찡그린다. 그런 우리를 마치 본 것처럼 「시작 노트 6」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대는 기껏 내가 일본어로 쓰는 것을 비방할 것이다. 친일파라고, 저널리즘의 적이라고. … 나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망령(妄靈)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40)."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내지 못한 채, 아픔을 가진 그들을 품어주지 못하는 우리가 비난하는 것은 누구인가. 쉬운 것을 미워하고 싶지 않다. 일본어를 쓰는 그를 미워하기보다는, 일본어를 쓰게 만든 자들을 기억하고 싶다. 온몸으로 써 내려가고자 했던 그를 비판하기보다는, 언령이 살아있었던 스물다섯의 청년을 사랑하고 싶다.

지리멸렬의 시대에 유대인 카프카가 써야 했던 독일어처럼, 김수영에게 일본어는 소수자의 언어가 아닐까. '친일문학=일본어 사용 / 민족문학=한국어 사용'이라는 낡은 이항대립은 그의 글쓰기 앞에서 박살 난다. 양극단 사이에서 아픈 몸으로 걸으며, 이국어를 통해 세계 지성을 습득하고, 결국 그는 모국어로 거대한 뿌리를, 아프지 않을 때까지, 온몸으로 썼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42쪽

 


5. 한국전쟁

나는 '민간 억류인', 친공포로냐 반공포로냐 택일을 거부했다

이 시대를 살아갔던 문학인들을 벗어내야 할 껍데기들이 너무 많았다. 때로는 이미 제2의 살갗이 되어 있던 것들을 벗겨내고자 피를 흘려야 했다. 일본어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김수영 시인은 여지껏 그러했든 택일의 선택을 강요받았다.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북한의 의용군이었고 포로수용소에서 2년간이나 수용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는 낙인이었다. 강제로 징집되었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57쪽

그러나 그는 "자신이 포로가 아니라 "민간 억류인"이었다고 호소했지만 세상은 그를 '포로'로 생각(58)"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시학은 "꽃"핀다. 포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시가 변했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진실은 생명과 죽음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듯, 어떠한 이분 할로 나눠질 수 없음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문득, 화냥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왜일까. 마찬가지로 이 역시 생(生)과 아픔이 얽혀 있어서가 아닐까. 흑과 백으로 누군가를 나누려고 한다면, 단 한 사람도 한 쪽 편에 온전히 설 수 없다. 그렇다고 사람을 반으로 갈라 죽일 수도 없으니, 기억하자.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59쪽


8. 기계

기계와 사물의 운동을 꿰뚫어 본 관찰자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까지

모조리 노출 낙하시켜 가면서

안개처럼 가벼웁게 날아가는 과감한 너의 의사 속에는

남을 보기 전에 네 자신을 먼저 보이는

긍지와 선의가 있다

_「헬리콥터」 부분

"한국문학사에서 김수영 문학의 특이한 점으로는 일상의 사물이나 기계, 나아가 전쟁 무기 등을 시적 소재로 끌어들이는 과감성(79)"이 꼽혔다. 낯선 주제와 연결된 김수영 시인의 한 면모가 새로웠다. 한국 전쟁을 치르면서 보았던 초경량 헬기 H-13 Sioux 모델을 그려낸 것이라 해석했다. 여느 표현처럼 "기계-사물은 단순히 감정이입의 매개나 재료가 되지 않고, 그 자체의 사물성을 스스로 발산하고 있어(79)"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면 쉬이 이해할 수 없지만, 시인의 그 순간을 알게 되면, "하나의 사물이 인류의 역사에 필적할 만한 고독과 역사를 품는 것으로 비약되면서 사물과 화자 사이의 관계를 훌쩍 뛰어넘는 스케일의 전개(79)"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생명에 무심해지는 전쟁 가운데에서도, 차운 기계까지 읽어내려가는 김수영 시인의 마음을 닮고 싶다. 사람에게서 쉽게 찾아낼 수 없는 면모를, 헬리콥터에게서 드러내면서 결국에는 선함을 기억하려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러니까 시에 표현된 "앙상한 육체의 투명한 골격과 세포와 신경과 안구"는 과장되거나 난해한 시적 수사가 아니라, 한 명의 환자라도 더 후송하려는 선의를 품은 헬리콥터의 기능과 디자인을 시인이 가감 없이 관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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