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느끼는,
믿음과 삶이 분리된 것 같은 이들에게.
'왜 세상은 이토록 엉망인가? 나는 또 왜 이렇게 엉망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모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한 자락 恣樂]
다만 우리 문화 속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알려 주고 싶다. 그리고 그 경험을 묘사하기에 전쟁만큼 좋은 비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 오늘날 서구 사회 문화 속에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영혼을 지키기 위한 전쟁처럼 느껴진다.
거짓들의 진실, 20쪽
흔히들, 믿음 생활을 '영적 전쟁'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축복 가운데 태어나 삶의 치열함을 자신의 기준만으로 재단해버리는 이 평온한 시대에는 그와 같은 비유가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무지한 어린아이는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한다. 연필을 깎는 칼이 날카로움을, 라면을 끓이는 전자레인지의 뜨거움을 알아야 한다. 베이거나 데이고서야 느끼는 아픔이 있지만, 미리 '배워' 아는 아픔도 있다.
세상, 육체, 마귀
이 책은 살짝 피 흐른 정도, 불그스름한 화상 자국 정도의 아픔을 정확하게 명시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는 이런 범주를 무시하는 경향(23)" 가운데에서 "왜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의아하게 생각(23)"하고 있을 때, 답한다.
이것은 '거짓말'에 맞서는 전쟁이다.
문제는 단지 우리가 거짓말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짓말에 따라 '산다는' 것(23)이다.
곁에서 믿음이 있는 이를 찾기 힘들어지면서, 기독교가 개독교로 칭해지면서, 그에 더하여 존중받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는 매일 전쟁을 치른다.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부터, 기독교인이라 말하는 것과 그로 인해 받는 시선까지 쉬운 것은 없다. 지금의 전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왔는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답을 찾아가야겠다는 첫 발자국을 내딛게 한다.
마귀는 존재한다.
이 말을 하자마자 누군가는 의아해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이 시대에 이런 믿음을 가진다는 것에 어이없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귀는 엄연히 실재한다(41)." 책에서는 마치,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여러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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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흔히 보는 것과 달리 마귀는 지옥에 있지 않다. 그는 지금 여기, 이 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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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는 비물질적인 존재다. 하지만 세상 속에서 역사하는 '실질적인' 지적 존재다.
또, 그는 우리에게 여러 번 묻는다. 그저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 예수님의 말씀이 옳았을 가능성과 마귀가 실재한다는 가정의 확률을 '생각만'이라도 해보라는 것.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의 첫걸음을 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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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예수님이 현실의 진정한 본질을 우리보다 더 잘 아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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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다른 곳들에서 많은 사람이 상식으로 여기는 것을 우리가 놓치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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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엄청난 과학, 기술, 정치이론을 갖추고도 실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아니, 일부러 무시하고 있다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틀렸다는 말에 수긍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우리는 어쩌다 세워진, 설명할 수 없는 전제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잘못되었을 때 부딪히는 것." 이것이 내가 아는 '현실'에 관한 최상의 정의다. 내가 날 수 있다고 믿고서 10층 빌딩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몇 초 후에 나는 현실에 부딪힌다. 부딪혀 봐야 현실을 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거짓들의 진실, 55쪽
우리는 세상을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 '나름의 개념으로부터 세워진' 세상을 살아간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우리는 공기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고 숨 쉬듯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내가 숨을 쉰다는 것을 '인식'할 때부터 들숨과 날숨이 번거로워진다고 하지 않던가. 어쩌면 현실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런 시간을 거치고 나서야 진정으로 편안한 숨을 내쉴 수 있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삶이 전쟁처럼 여겨지는 것, 숨 한번 내쉬는 것이 무거운 것. "우리는 현실에 관한 거짓된 개념들의 압제에 짓눌려 있다(73)."
우리가 믿게 된 거짓을 마주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 있다. T.S.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다. "인류는 현실을 도무지 견뎌 낼 수 없다." 우리가 부여잡고 있는 환상은 우리 정체성의 일부, 나아가 우리 안정의 근거가 된다. 거짓은 우리를 두려움이라는 감옥에 가두면서도 안전하다고 느껴지게 한다. 그래서 우리 영혼의 토양에서 거짓을 뽑아내면 고통스러울 수 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작업이 끝낼 때까지는 자유로울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때만 평안을 찾을 수 있다.
거짓들의 진실, 72-73쪽
단순히 믿음이 있는 기독교인을 중점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닌 '그렇지 않은' 독자들과도 대화하는 느낌을 계속해서 이어나간다. 그저 전달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라면,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의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지나친 확고함을 내려놓는 것이 어떻냐는 요청뿐이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듯이. 5 더하기 5는 10이라고 '말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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