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단순도식화'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도 오래 사귀어봐야 알 수 있는 법인데 하물며 수많은 사람들이 엮어서 오랜 기간동안 만들어낸 역사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긴 역사를 한 눈에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라도 '단순도식'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는 탁월한 책이다. 물론, 역사를 공부하는 이들을 위해 출간된 책이 이 책뿐일리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세계사를 섭렵하려는 엄청난 첫걸음을 떼는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는 '제목'일 것이다. '하룻밤'이라는 제목이 주는 부담감 해소는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누구나 역사에 처음 흥미를 갖게 된 뒤에 드는 첫 고민은 '어떤 책으로 역사를 공부하면 좋을까?'일 것이다. 그때 '하루'만에 5000여년 인류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 제목은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을 느끼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처음 세계사를 공부할 때 이 책이 함께 했던 경험이 있다.
둘째는 '흐름'일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다가 흔히 하는 실수가 '고대-중세-근대-현대'를 개별적으로 공부하다가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게 되는 부분, 흔히 '과도기'라고 부르는 그 부분을 간과하고 넘어가 인류 역사의 장대한 '흐름'을 파악하지 못해서 '이해'가 부족하게 되고, 또 '이해'가 부족하니 아무 맥락도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암기'하게 되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이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시대 흐름'이 어떤 까닭으로 어떻게 바뀌어 갔는지 빠삭한 이해가 함께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해'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역사책을 읽다가 억지로 꿰어 맞춘듯한 어색함이 보인다면 그 부분은 글을 쓴 이의 역량 부족이니 그런 책은 망설이지 말고 던져버리는 것도 훌륭한 역사공부법이고 독서법이다.
그리고 셋째는 '편집'일 것이다. 역사를 전공하는 사학도가 아닐 바에야 '대학 논문'스런 역사책을 볼 때면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역사적인 교양을 얻으려는 독자에게 '사료'를 분석하며 읽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을까. 그런데도 어떤 역사책은 '백과사전'을 능가하는 전문적이고 어려운 설명을 남발할 뿐 아니라 역사 초보 독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무성의한 편집 탓에 역사를 멀리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출판사도 이런 점을 고민 많이 했는지 요즘에 출간된 역사책은 유독 이 '편집'에 신경을 쓰며 독자들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눈에 띤다. 솔직히 이 책도 '개정증보판'이 나오고 난 뒤에야 '합격점'을 주고 싶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바로 이 점이 불만이었었다. 내용은 둘째치고 글자조차 눈에 잘 안 들어왔다능...
느닷없지만, '역사를 왜 공부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아이들에게 수업을 할 때에도 어김없이 던지는 질문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늘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역사가 재밌다는 점은 알게 되었지만, 그런데도 쉬운 공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콩쥐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공부를 해도해도 모르는 것 투성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름 이과 출신에 공대생이었던지라 역사에 대해서는 사사받은 은사님이 안 계셨고 늘그막하게 독학을 해왔던 참이라 밑 빠진 독을 막아줄 '두꺼비'가 절실하였기에 늘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답은 늘 만족스럽지 않았다.
당장 고입, 대입 성적 때문에 나에게 맡겨지는 아이들에게 '역사'는 성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서울대를 목표로 했던 학생을 가르칠 때에는 아이 스스로 "역사가 재미있어서 대학에 가서도 더 공부하고 싶어요. 대학에 합격한 뒤에는 세계사를 교양으로라도 듣고 싶네요."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돈벌이도 할 수 없는 '역사'를 전공해서 후회막심이었다는 교수님과 강사님을 수없이 만나왔던 터라 그리 흡족한 대답은 아니었었다.
그럼에도 난 오늘도 역사책을 읽는다. 비록 그 수준이 망망대해에 던지는 돌멩이 수준이지만 애초부터 망망대해를 돌멩이로 메울 목적이 아니기에 허망하지는 않다고 위로한 적도 있었다. 역사책을 읽을 때에 행복하다는 낯간지러운 까닭을 들던 철없던 때도 있었다. 또 바다의 깊이를 알기 위해서라는 멋적은 핑계도 한물 간 뒤에는 그 돌멩이가 바다에 입수할 때 나는 퐁당소리가 주는 여운이 듣고 싶어 읽는다는 개수작도 써먹은지 오래다. 그래서 요즘엔 '그냥 읽는다'고 말한다. 굳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역사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기 때문이다.
요즘엔 그냥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니 새삼 보이는 것들이 많다고 말하기도 한다. 보이는 것(안목)이 많고 넓으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알겠고 말이다. 내가 만약 지금 깨달은 이치를 갖고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정말 알차게 잘 살 것 같다. 그런 까닭에 아이들에게 역사 수업을 할 때에도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준다. 그 애들도 나중에 세월이 흘러야 겨우 이해할 이야기를 말이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