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뇌과학'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는 책은 많지만, 초등학생을 위한 뇌과학 책은 드물다. 물론 뇌과학이론이 초등학생 수준에서 이해하기에 어려운 감이 없지 않다. 더구나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는 생소한 과학인 탓에 '인간의 마음을 연구한 과학(심리학)'을 접할 기회는 더더군다나 없다. 실제로 초등학생에게는 '프로이트', '아들러' 같은 심리학자들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는 위인(?)들이었다.
하긴 '프로이트'의 심리학 입문을 볼라치면 온갖 야한 상상을 떠올리게 할 뿐이고, '아들러'에게서는 열등감(미움)을 마주할 용기라는 어마무시한 숙제를 안겨주는 까닭에 더더군다나 접하기 힘든 인물인 것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초등학생이 '뇌과학(심리학)'을 접해서는 안 되는 금기가 되어야만 할까? 그건 아닐 것이다. 오늘날의 '인공지능(AI)'도 인간의 생각(마음)을 연구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초등학생도 얼마든지 뇌과학을 접하고 즐길 수 있다. 바로 정재승의 <인간탐구보고서> 시리즈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그 가운데 '다섯 번째 책'으로 인간의 감각을 다루고 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맡아서 느낄 수 있는 '오감' 말이다. 이 감각은 초등교과에 이미 담겨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착각' 말이다. 도대체 왜 인간은 '착각'에 빠지는 것일까?
인간의 뇌는 참으로 놀랍다. 그동안의 기술발전으로 만들어진 '슈퍼컴퓨터'보다 월등한 성능을 갖고 있는데도 '망각'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진화시켜서 성능을 최소한으로 낮춰서 사용하는 매우 비효율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의 뇌가 100%의 성능 가운데 고작 1%를 사용하는데 그치고, 천재라는 특별한 사람도 최대 3% 이상을 써본 적이 없다는 우리의 뇌는 왜 이 모양으로 진화하게 된 것일까?
암튼, 이 책에서는 '감각'이라는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착각'을 주로 다루고 있는 탓에 앞선 질문에 대한 해답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착각'이라는 주제도 '망각'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뇌 성능을 크게 낮춰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다. 아니면 '착각'을 통해서 더 큰 이득을 얻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인간의 감각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그래서 두 눈 크게 뜨고 '보고' 있는데도 속기 일쑤다. '차갑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차갑지' 않은 경우도 다반사다. '들리는' 것이 정말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냄새나 맛도 속이기 참 쉬운 감각이다.
이렇게 절대적이지 않은 '상대적'인 감각들에 둘러싸여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일까? 냉동창고에 갇혀 버린 사람이 얼어죽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영하 30도로 모든 것을 꽁꽁 얼려버리는 냉동창고에 갇혀서 온몸이 꽁꽁 얼어버린 실제 사건이기도 하다. 잠금장치 고장으로 안에서는 열고 나올 수 없는 불운한 사고였는데, 더 놀라운 사실은 사고 당시 냉동창고의 내부 온도는 영상 15도였다는 사실이다. 화물을 모두 내려놓고 빈 창고로 돌아오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낮은 온도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냉동창고 안에 갇힌 사람은 온 몸이 꽁꽁 얼어버린 채 사망했다. 오직 스스로 '얼어죽을 거'라는 생각만으로 스스로를 꽁꽁 얼려버렸던 것이다. 주위 온도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생각'만으로 몸을 얼려버릴 수 있는 '착각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인간은 믿고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때로는 '감각'을 조작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몸을 무쇠보다 단단하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강철보다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순간적이긴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왕왕 믿을 수 없는 힘을 발휘해서 극복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착각'을 통해서 긍정적인 힘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감각의 착각'을 통해서 "난 잘 생겼어"라는 말 한마디에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도 있으며, 무더위나 강추위도 정신적으로 극복해내는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시각 정보'를 덜 정확하게 받아들임으로 인해서 '착시현상'이나 '마술쇼'를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TV'나 '영화'와 같은 동영상도 재미나게 즐길 수 있고 말이다. 만약, 시각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이런 재미난 일상은 결코 즐길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바나나맛'과 '바나나향'도 간단히 즐길 수 없게 될 것이다. '바나나맛 우유'에는 결코 바나나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말했다. "인간은 절대로 착각에 빠지지 않는다는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착각은 없다. 어쩌면 인간은 착각에 빠져 살기 때문에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 때론 '진실'이 거짓보다 무시무시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