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연 이러한 불합리한 삶을 강요받아야만 하는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런데도 자기들은 거짓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며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는거 아니냐고 변명한다. 조금이라도 자기성찰의 과정을 거친 결과인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게 현실이다. 어느 누군들 죽음 앞에서, 굶주림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까? 설령 당당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럴바에야 자기성찰이니 자기반성 따위가 무슨 소용있을까. 오십보 먼저 도망치나 백보 먼저 도망치나 도망치는 건 매한가진 것을...
그러나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분명 오십보와 백보의 차이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오십보 도망치던 사람은 다시금 되돌아보고 부끄러워하며 되돌아 올 수 있다고 보았고, 백보 도망치던 사람은 다시 되돌아볼지언정 결코 되돌아오지 못할 거라고 보았다. 그리고 오십보 도망쳤는지 백보 도망쳤는지, 그 기준을 세우는 것은 <자기성찰>과 <자기반성>이라고 보았다. 그랬기에 부조리한 사회를 향해 독설을 뿜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을 읽고서 작가의 독설을 느낄 수 없었다면 당신은 이미 백보만큼이나 도망간 병사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설령 백보를 도망쳤더라도 늦지 않았을 것이다. 되돌아오는 길이 좀더 길고 험난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되돌아보았다는 것, 되돌아 가겠다는 굳은 심지다.
더럽고 치사한 세상에 태어나 독야청청 살아가 달라는 건 작가의 본심이 아닐 것이다. 단지 최소한의 양심을 갖추고 깨끗하고 맑은 세상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그 몇 안되는 양심들에게 힘이 될 거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 땅의 양심들에게 힘을 실어주리라 아낌없이 박수쳐주리라 다짐해본다. 비록 그렇지 못할 나약한 존재임을 뼈져리게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