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대한 평을 결론으로하여 먼저 말하자면, 제목만큼 호락호락한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부제목인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라는 점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한 권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은 느낌이 물씬 난다. 또 '모두를 위한 철학소설'이라는 책소개에도 그다지 공감가지 않는다. 차라리 '철학에 관심있는 모든 분에게 권하는 소설'이라고 정정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이 책의 내용에 어울리는 좀 더 친절한 설명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절대로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지철학>이기에...
그러나 이 책이 '모두를 위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담론'을 주체로 한 철학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철학에 관심 있는 분들이 먼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철학의 내용'이 아니라 '철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거지'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말해 철학의 초보자들은 어렵고 심오한 철학의 내용에 반해서 철학에 관심을 보이기보단 철학을 설파하는 사람들의 고상한 행동거지와 능수능란한 말투에 반해 관심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에 <이지철학>이란 제목이 붙었다고 생각한다. 결코 쉽지 않은 이 책에 왜 이런 반어적인 제목이 붙었는지 이 책을 다 읽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즉, 이 책의 내용이 쉽다는 것이 아니라 <철학에 관심을 가지기>가 쉽다는 취지에서 <이지철학>이란 제목이 어울리는 것이다.
정말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화처럼 우리 일상 속에서 담론의 문화가 꽃피웠으면 좋겠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생각하기>를 힘들어 하게 되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논하라 하면, 그따위 고리타분하고 정답도 없는 것을 무엇에 쓰려고 핏대 세우며 이야기하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한술 더떠 '시간낭비'라고 못 밖아 비난하는 것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토대에선 '사상(개념)'은커녕 '사고(생각)'조차 발전할 수 없다. 도대체 학문(공부)을 한다면서 생각조차 하길 꺼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런데도 생각하는 학문은 어려운 학문이라고, 비생산적인 학문이라고 무조건 꺼린다.
이 책은 은연 중에 이런 주장들에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철학은 분명 어려운 학문이지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조차 어렵지는 않다고, 분명 쉬울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왜냐하면 철학자들은 이름만 거론하여도 뭔가 있어보일만큼 멋지기 때문이다. 현재 철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공감하시리라 짐작한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어려운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나요?"라는 질문에 "철학자가 멋있어 보여서요."라는 대답이 정답이지 않을까? 물론 궁금증을 탐구하고 현상의 실체를 발견하기 위해 철학을 선택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또 중국인 작가가 철학을 논한만큼 동양사상철학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는 '철학자'하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리스', '칸트', '데카르트', '헤겔' 등등 서양철학자만 열거하고, 서양철학만 진정한 철학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이미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철학에서 한계를 발견하였고, 그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동양사상에 관심을 기울인지 오래다. 이에 동양사상학자들도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융합점을 찾기 시작했는데 이 책은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 동양사상이 중국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저자의 본거지인 중국 편파적인 부분이 아쉽고, 고대 인도사상과 근대이후 일본철학과 일본근대철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조선성리학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것들 모두 수록되어 있다면 절대로 <이지철학>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폄하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결코 쉽지 않은 <이지철학>. 학문을 위한 담론을 위해, 일상의 교양을 쌓기 위한 풍부한 이야기꺼리를 제공하기 위해 온국민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읽다가 주무시는 분들을 위해 베개를 준비하시라고 권하는 것을 전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