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녀가 천재가 아닐까하는 착각은 흔히 한다. 그리고 그 '착각'은 아이의 생애 첫낱말이 입밖으로 나오고 첫걸음마를 뗄 때까지 '환상'으로 성장한다. 그러다 보통은 5~6살이 넘어갈즈음에 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환상이 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그 '환상'이 기대감으로 바뀐다. 이때쯤부터 부모의 '기대'는 아이에게 '성장'으로 작용한다. 부모의 기대가 크고 강할수록 아이의 성장은 '무럭무럭'이다. 아이는 스폰지처럼 흡수할 시기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폭풍성장을 보여주는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혹은 그런 부모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한 아이는 불행한 걸까?
이 책은 축구를 좋아하는 평범함(?) 소녀와 천재 피아니스트인 오빠를 둔 부모 사이에서 벌어지는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행복한 가족을 이룬다는 울트라초특급서스펜스스릴러를 다룬 이야기는 아니고, 천재적 재능을 가진 오빠에게 기대를 거는 엄마와 그러는 엄마에게 살짝 제동을 걸며 아들이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아빠 사이에서 평범하다 못해 자기 꿈을 핑계로 말썽을 피우는 여동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평범한 이야기다.
살짝 복잡한 것 같아 다시 정리하면, 아빠, 엄마, 오빠, 여동생이 등장하는 이야기에 여동생이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런데 오빠는 천재인데 여동생인 주인공은 평범한 아이다. 아니 축구선수로 활약하는 여자아이니까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빠가 천재 피아니스트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탓에 여동생이 평범해 보일 뿐이다. 이런 오빠가 자랑스러운 엄마는 천재인 오빠가 더욱 완벽해질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도 이런 오빠를 위해서 자신처럼 기꺼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빠는 생각이 다르다. 천재적인 소질을 가졌다고 해도 특별대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냥 가족의 일원으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오빠는 그런 엄마의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열심히 피아노 연습을 하지만 콩쿠르가 다가올수록 예민해져가는 자신에게 더욱 짜증이 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막내인 주인공은 축구 대회에서 큰 활약을 하는 꿈을 꾸며 나름대로 열심히 축구를 한다. 온가족이 온통 오빠에게 쏠린 관심에 속상해하면서도 유명한 오빠를 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한...평범한 소녀처럼 말이다. 그러다 오빠의 중요한 콩쿠르 대회와 주인공의 축구대회 날짜가 겹치며 사건이 벌어지는데...
난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발명왕 에디슨은 천재에게 '99%의 노력'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말했다지만 '만들어진 천재'가 넘쳐나는 요즘에는 어울리지 않는 비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천재가 타고나지 않고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아니 좀더 자세히, 천재를 만드는 '공식'이 있다면, 수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을 천재로 만들기 위해 아이의 삶을 그 '공식'에 몰아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삶이 부모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끔찍(?)한 일일 것인데, 부모가 믿는 공식(!)에 하나뿐인 내 삶의 전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은 더 끔찍하지 않을까.
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가 어릴 적부터 그 재능을 꽃 피워 더욱 갈고 닦아 인류의 발자취에 크나큰 획을 긋고, 족적을 남기며, 나아가 인류 공영을 이루는 위인이 되기까지를 '공식' 나부랭이로 만들 수는 없다. 아니 만들 수 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의무적'으로 살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흔히 우리 나라 교육과정으로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는 만들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우리 나라의 공교육과 사교육이 무작정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비록 천재를 키워낼 수는 없지만 우수한 인재를 키워내는데 어느 정도 성과는 낸 교육방식이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 나라 교육의 문제는 '학생들이 교육을 받으며 대다수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더 불행하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바로 '만들어지고 있는 천재'들이 아닐까 싶다.
결국, 천재 피아니스트 오빠는 모두가 합격을 예상한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런 오빠를 인정하고 자연스레 받아주는 가족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내가 인상적으로 본 것은 오빠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박차고 나오는 모습이었다. 독설을 날리는 것을 즐기는 기성세대들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오빠를 탓할지도 모른다. 자기 음악을 하기에 앞서 먼저 대중적인 성공(!)을 이룬 뒤에 모색을 해야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성공했다한들 이미 '자신의 본 모습'은 없지 않은가. 대중의 사랑을 받기 위해 대중들이 원하는 천재의 모습에 맞춰져 만들어져 버린 가짜 천재 말이다.
진짜 천재는 많다. 모든 사람은 한 가지 재능을 타고난다는 말도 있으니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수만 있어도 천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도 초능력을 갖춘 영화 속 히어로마냥 특출날 뿐만 아니라 대중적 사랑까지 듬뿍 받고, 돈도 많이 벌어야 진짜 천재라고 오해하는 사회 분위기는 지양해야 마땅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