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에 대해서 잘 정리한 책이다. 분량도 적당하고, 감정적으로 너무 들어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고, 사건의 배경과 진행과정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내용이 길지 않게 잘 요약되어 있다. 강요섭 화가의 작품이 삽화처럼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다. 삽입자료가 강화백의 작품이 시각적으로 사건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러 권의 43 관련 책을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전체 개요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47년 3월 1일의 발포와 48년 4월 3일의 남로당 무장 봉기가 사건의 발단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가혹한 토벌은 실제 아무 상관없는 무고한 주민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처음에는 제주 주민들에 대한 무시와 타자화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었는가 생각도 해 보았고, 유력 정치인이나 관심 세력이 있었으면 그렇게 무시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오늘 책을 읽고 생각이 한번 더 바뀐다. 이것이 뒤에 있을 625 한국 전쟁의 프리뷰이며, 수많은 목숨을 가져간 보도연맹 사건과 자국민을 완전히 방치한 국민방위군 사건과 바로 연결된다. 이어 서울이 수복되었을 때 도강파와 잔류파에서 잔류파가 받아야 한 억울한 시선과 다를 바가 없다.
419 민주화 운동 이후 잠깐 나왔던 진상요구는 516 쿠데타에 의해서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으며, 겨우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에 다시 요구가 나오게 되고 그것이 문민 정부 이후에 진상이 밝혀지게 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소설 “화산도” “순이 삼촌” 등으로 알려졌다. 현기영 소설가는 이 작품으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군사독재정권에서는 참 흔한 일이기도 했다.
제주 43은 여러 성격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무고한 주민들이 양쪽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사건이다. 그리고 수십년간 진상요구를 주장하지 못하고 묻힌 사건이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사건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우리가 드디어 민주 국가로서 국가의 공권력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주 늦었지만 한발 나간 것으로 평가한다. 진보 진영뿐 아니라, 보수 진영에서도 추념식에 참여하고 추념사를 내는 것을 환영한다. 제주도가 빨간 섬으로 남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평화의 섬으로 꾸준하게 유지되었으면 한다.
제주 43의 여러 책이 있는데, 간결하고 건조하게 (한편으로는 시인의 감성으로) 전체 맥락을 쉽게 보고 싶으면 이 책은 괜찮은 선택으로 보인다.